대만이 반도체와 LCD(액정표시장치)의 대(對)중국 투자 규제를 대폭 완화한다. 대만 기술과 중국 자본간 결합이 본격화될 조짐이어서 대만과 경쟁관계에 있는 국내 전자업체에 상당한 부담이 될 전망이다. 이번 조치로 중국에 LCD 패널 생산공장 설립을 서두르고 있는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 등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양안(兩岸)관계를 고려,LCD 산업 발전 프로젝트의 파트너로 한국 대신 대만 업체를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대만,첨단기술 중국행 허용

시옌샹 대만 경제부 장관은 11일 "대만의 반도체와 LCD 기업들이 중국에서 첨단기술을 사용해 원하는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 장관은 "대만 IT(정보기술)업체들이 중국보다 대만 내에서의 투자가 더 많고 대만에서 기술 개발을 진행한다는 전제가 충족된다면 며칠 뒤 투자허가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은 지금까지 6세대 이하급 LCD만 중국내 생산을 허용하는 등 첨단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대중 투자를 엄격히 규제해왔다.

중국 정부는 오는 22일까지 외자 기업을 대상으로 LCD 공장 건설 신청서를 받아 심사할 예정이다. 첨단기술 습득을 위해 LCD 공장 유치를 서둘렀던 중국 정부는 글로벌 LCD 업체들의 '러브콜'이 잇따르자 업체를 선별한 뒤 허가를 내주기로 방침을 바꾼 상태다. 공급과잉 현상을 우려해서다.

◆중국 · 대만 정부 사전에 교감

대만 기업들이 중국내에서 첨단기술을 사용한 공장 건설이 불가능,한국 및 일본업체와의 경쟁에서 불리한 상황에 놓이자 대만 정부가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라는 게 국내 업계의 해석이다.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일본 샤프가 중국내 LCD 공장 건설 방침을 확정한 상태다. 대만에서도 AUO(AU옵트로닉스),CMO(치메이 옵토일렉트로닉스) 등이 현지 공장 건설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신청서 접수마감을 며칠 앞두고 투자규제를 완화했고,대만 경제부 장관이 며칠 안에 투자허가를 내주겠다고 밝힌 것으로 봐서 중국과 대만 정부 사이에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 · LG 등 국내업체 비상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 관계자는 "대만 정부도 규제완화가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자국 업체들이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힘든 싸움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으로 중국 LCD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만 정부가 자국 기업의 중국행에 전제 조건으로 내 건 조항들이 한국 업체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대만 정부가 최신 공정보다 한 단계 낮은 공정에 한해서 중국행을 허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 원칙대로면 AUO는 7.5세대,CMO는 6세대까지만 중국에 투자할 수 있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7.5~8세대 공장을 설립할 예정이다.

세계 각국이 중국행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은 2~3년 내에 중국이 세계 최대의 LCD 패널 수요처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디스플레이서치는 2008년 1337만대(세계 시장의 12.7%) 규모였던 중국 LCD TV 시장이 오는 2012년 4080만대(21.3%) 규모로 불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송형석 기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