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에쓰오일의 기름값 담합건에 무혐의 결정을 내린 것은 유류 같은 소수 사업자만 있는 과점시장의 가격 결정 특성을 인정한 것이다. 서로의 가격을 예측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외형상 가격이 일치하더라도 담합으로 볼 수 없다는 업계의 주장을 받아준 셈이다. 액화석유가스(LPG)에 이어 공정거래위원회의 무차별 담합제재관행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공정위의 잇따른 패소

에쓰오일 측은 대법원의 이번 판결에 대해 환영한다고 말하면서도 "공정위는 정유 4사가 가격을 담합했다고 주장했으나,나머지 3사는 몰라도 에쓰오일의 기름값은 다르게 움직였다는 점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한 공정법 전문 변호사는 "공정위의 경우 무죄추정의 원칙이 아니라 유죄추정을 원칙으로 조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업체들의 항변이 설득력있게 먹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법원 패소 판결은 지난해에도 있었다. 공정위는 2005년 8월 시내전화 요금 격차 감소를 위해 요금,시장점유율 등을 담합했다며 KT에 1130억원,하나로텔레콤에 21억원의 과징금을 각각 부과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대법원은 공정위가 KT에 부과한 과징금 1130억원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같은 날 SK브로드밴드도 21억원의 과징금부과는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지난해 9월에는 서울고법이 1994년부터 2005년 사이에 비닐 원료 가격을 담합했다며 LG화학에 부과한 98억여원의 과징금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법원이 공정위의 과징금을 취소한 금액만 553억6400만원에 이른다.

◆공정위 구조적인 문제

전문가들은 대법원에서 공정위가 패소하는 가장 큰 이유로 '봐주기' 등의 논란에 휩싸이기 쉬운 조사 특성을 들고 있다. 담합이라는 것은 결국 2개 이상의 기업이 있어야 가능한데 특정 기업만 무혐의 처분을 하게되면 특정 기업에 대한 봐주기 논란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때문에 혐의가 있는 한쪽을 처벌하기 위해 혐의내용이 확실치 않은 다른 한쪽까지 무리하게 끌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감사원을 의식하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공정위 공무원들이 은퇴하고 난 뒤 대기업이나 법률회사의 고문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례들이 늘어나면서 '훗날을 생각해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괜한 의심을 받기싫다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카르텔 혐의을 받고 있는 기업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모 변호사는 "똑같은 자료를 놓고 공정위와 법원이 정반대로 판단했다는 사실은 공정위가 처음부터 무리수를 뒀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대법원 결정에 영향을 받아 지난해 12월 LPG 가격담합을 이유로 공정위에서 사상 최대 규모인 6689억원의 과징금을 받은 E1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사 및 LPG 수입업체들의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LPG시장도 휘발유와 마찬가지로 환율 수입가격 등의 영향으로 상품가를 조절할 수 있는 여지가 적은 탓에 경쟁업체 간 가격 차이가 좁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신영/이정선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