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은 미국 대기업들이 지난해 투자를 줄이는 대신 현금성 자산을 큰 폭으로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S&P500 지수에 편입된 대기업 중 월그린,제너럴일렉트릭(GE) 등 256개사의 지난해 말 현재 현금성 자산은 1년 전보다 5180억달러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금성 자산 증가 비율은 78%에 달했다. 이 기간 중 투자 등으로 인한 자본 소비는 43% 감소했다. 작년 말 현재 전체 S&P500 기업이 가진 현금성 자산은 전년 말보다 14% 늘어난 2조1800억달러 규모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미국에서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기업들의 투자 기피 현상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이튼사의 샌디 커틀러 최고경영자(CEO)는 "예전처럼 경기가 좋아질지 불투명하다"며 "이 같은 불확실성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에 매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수요가 살아날 조짐을 보여도 대부분의 기업들은 투자를 늘리는 대신 유휴 생산설비를 가동하고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방법으로 공급을 늘리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지출과 배당을 줄이는 대신 차입을 늘리는 방식으로 현금 보유를 확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GE는 작년 2월 분기당 배당금을 기존의 주당 31센트에서 10센트로 줄여 연간 90억달러의 현금을 확보했다. GE가 연간 배당을 줄이기는 1938년 이후 처음이다. 중장비업체인 캐터필러는 자본 소비를 줄이는 방식으로 현금성 자산을 48억7000만달러 확보했다. 이는 1년 전에 비해 78% 증가한 것이다. 이 회사는 경기침체가 시작된 2008년 12월 이후 정규직과 임시직을 포함해 3만6000명을 감원했다. 의약품 판매 체인인 월그린은 올해 자본 소비 규모가 16억달러 정도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8년 22억달러,2009년 19억달러에 비해 줄어든 것이다. 월그린의 작년 말 현금성 자산은 31억5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3배로 불었다.

이와 관련,RBC증권의 스티븐 스탠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4분기 장비 및 소프트웨어 투자가 13% 증가하고 임시직 고용이 늘어난 점에 비춰볼 때 기업들이 조만간 투자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