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은행의 규모와 업무범위를 제한하는 금융규제안을 발표했다. 이 규제안은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골격을 마련했다고 해서 '볼커 룰'로 불린다.

볼커 룰은 비영리 국제경제금융협의체인 '그룹 오브 30'가 작년 1월 각국 정책 당국자들에게 통화당국의 권한 강화와 함께 제시한 권고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협의체에는 머빈 킹 영국중앙은행(BOE) 총재,스탠리 피셔 이스라엘 중앙은행(BOI) 총재,앤드루 크로켓 전 국제결제은행(BIS) 사무총장,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 등 35명의 쟁쟁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볼커 룰'은 전 세계 금융규제의 틀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BOE의 킹 총재는 은행의 대마불사(too big to fail)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자본 요건 강화 외에 은행의 투자업무를 예대업무에서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사이먼 존슨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도 지난 4일 열린 미 상원금융위원회 청문회에서 "은행 규모를 축소시키는 게 시스템 리스크를 줄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세계 금융 시장안정을 위한 금융 규제안은 11월 서울에서 개최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핵심 의제로 논의될 예정이다. 한국이 의장국으로서 글로벌 금융 현안을 주도적으로 논의한다는 것 자체는 가슴 벅찬 일이다.

하지만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금융산업 현 주소를 생각하면 우울한 것도 사실이다. 경제 규모에 비춰 한국 금융사의 경쟁력은 취약하다. 인수 · 합병(M&A)을 통한 대형화,금융허브를 통한 글로벌화를 추진해왔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선진시장 진출은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다. 관치의 그늘도 여전하다. 은행 수장이 바뀔 때마다 인사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금융 허브는 갈길이 너무 멀어 논의하기조차 쑥스러울 정도다. 통화정책의 수장인 한국은행의 위상과 역할을 두고도 항상 논란을 빚는다.

국내 금융산업이 얼마나 취약한지는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최근 열린 금융 관련 세미나에서 한 발언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는 "금융 규제 강화는 중학생 수준으로 올라가려는 국내 금융산업을 다시 초등학생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 금융감독의 틀이 바뀌는 틈을 이용해 규제가 강화되면 자칫 관의 시장 개입이 늘어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금융사의 경쟁력을 더 떨어뜨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부는 큰 룰만 제시,판박이 영업을 해온 은행들이 경쟁력 있는 부문을 찾아 실력을 키울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옳다.

이를 위해선 은행들은 먼저 유능한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 인재가 있어야 M&A로 몸집도 불리고 글로벌 영업도 할 수 있다. 필요하면 월가 우수 인재라도 데려다 써야 한다. 제조업이든 금융업이든 경쟁력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초딩' 수준의 금융산업이 '점프-업'할 수 있는 방안이 활발하게 논의되길 기대해본다. 한국의 금융산업이 어디를 가고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국이 G20 회의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