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을 되찾아가던 세계경제가 유로존 금융위기로 다시 휘청거리고 있다. 이를 계기로 지난 50년간 추진돼온 유럽연합(EU)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2005년 헌법조약(Constitutional Treaty) 폐기에 이어 유로화 단일화폐의 유효성 논란까지 제기돼 경제부문에서 정치통합까지 완전한 지역통합을 추진해 온 유럽연합의 앞날이 밝지 않다.

경제통합론에서는 유럽의 사례가 지역경제통합의 전형적인 모델로 소개돼 왔고,지역통합을 통해 전쟁을 억제하자는 슈망플랜은 단순 경제통합논리를 넘어 철학적 의미까지 담고 있다. 이미 1957년부터 유럽은 유럽경제공동체(EEC)라는 명칭을 사용했고,유럽국가들은 의사결정에서 지속성(sustainability)에 대한 영향을 중요한 평가항목으로 삼고 있다. 지구온난화 방지 등 환경문제,사회적 안전망 강화 등이 유럽에서 먼저 발달하게 된 것도 지속성에 대한 관심이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포르투갈,그리스 등 피그스(PIGS) 국가의 재정건전성 악화로 금융위기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정작 EU 내부의 지속성 문제에 대해서는 소홀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무역개방을 통한 시장통합과는 달리 화폐통합은 엄격한 원칙이 적용돼야만 유지될 수 있다. 화폐의 가치,즉 환율은 그 화폐를 사용하는 국가경제의 안정성 및 지속성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1999년 유로화 출범 이후 논란이 적지 않았다. 비유로존인 영국,스웨덴 등이 미국발 금융위기로 심각한 경제영향을 받은 반면,미 달러화를 대체할 수 있는 통화로 인정받게 된 유로화의 달러화 대비 가치가 올라갔고 유로존 국가 경제도 비유로존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았다.

하지만 물가,고용 등에서 유로존의 실적이 당초 기대에 못미쳤고,이번 피그스 위기로 경제통합과 정치통합간 비대칭성에 대한 EU의 제도적 문제가 드러나 EU는 고도의 지역통합 추진방향을 다시 한번 검토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최악의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지출을 확대함으로써 재정위기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현재의 여건하에서는 이러한 위기가 향후에도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독일,프랑스 등 유로존 주도국들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유로화 가입시 의무조항으로 돼 있던 재정적자 3% 상한선이 사실상 폐기되었고,회원국에 맡겨진 재정정책 자율성 및 과다한 국가채무 문제를 EU가 효과적으로 개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유로화 가치가 안정되기 어렵다. 더구나 2009년 12월 발효된 리스본조약은 헌법조약안에 있던 초국가적인 상징 개념을 삭제,미 연방과 같은 초국가조직을 도입하기 어렵게 됐다.

독일,프랑스 등 유로존 주도국들이 이번 그리스 위기 해결을 위한 구체적 지원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자국내 사정도 만만치 않아 선뜻 결정하기 어렵다. 유로존이므로 그리스 정부가 환율,금리 등 통화정책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할 수 없고,IMF 구제금융 신청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리스가 국가부도 상황으로 더 악화되는 경우,IMF 등이 개입함으로써 유로의 위상이 약화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유로존이 나서서 해법을 제시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이는 급한 불을 끄는 것에 불과하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EU는 모네-슈망 등 '유럽통합의 아버지'들이 기획했던 통합의 길을 제대로 따라가야 할 것이다. 리스본조약을 개정해 초국가기구인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을 구축해 정치통합이 경제통합과 균형되도록 진전시키지 않는 한,위기국면은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경제학/국제통상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