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메마른 시대… 당신이 더욱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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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환 추기경 선종1주기…3월 28일까지 추모기간
"우리 주교들은 일부 학생들을 비롯한 지식인들의 비판적인 소리가 있을 때에도 정부는 좀더 관용적인 자세를 취할 수 없는가 하는 아쉬움을 느낍니다. 아울러 대학의 운영을 총학장과 교수 등 학원 당사자들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결단이 있었으면 합니다. "
유신정권에 대한 학생 · 지식인 등의 저항이 거세지던 1972년,김수환 추기경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 같은 내용의 편지를 썼다. 47세의 나이로 세계 최연소 추기경에 임명된 지 3년째 되던 해였다.
편지에서 김 추기경은 네 가지를 촉구했다. 복역 중이거나 사건이 계류 중인 학생들의 사면 또는 소 취하와 복학,구속 또는 복역 중인 지식인 · 근로자들에 대한 석방 및 소 취하,대학의 자율적 운영과 대학 내 사복경찰과 정보원 철수 등이었다.
김 추기경의 선종(善終) 1주기인 16일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데 앞장섰던 고인의 이 같은 손길이 고스란히 담긴 친필원고들이 공개됐다. 이날 오전 서울 합정동 절두산 순교성지 내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에서 개막한 유품전에서다.
편지에서 김 추기경은 정중하고도 단호하게 민주화 조치를 요구했다. 첨삭 가필한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어 시국에 대한 그의 고민을 엿보게 한다. 또 1975년 신학생 피정 후 했던 강연 원고에서는 "가장 큰 사랑으로 자신에게 얽매이지 않고 자신을 남의 행복을 위해 서슴없이 내줄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큰 자유인"이라며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한 그리스도는 가장 큰 자유의 사람이었다"고 강조했다.
5월23일까지 계속되는 유품전에는 제의 · 제구 · 개인 소지품 등 140여점의 유품들이 전시된다. 고인이 공부하고 기도할 때 썼던 기도서와 미사성가집,로마예식서,미사경본,각종 사전,독일 뮌스터대 유학 시절 학생증과 학생기록부,용돈 기입장,주교 · 대주교 · 추기경 임명 칙서와 추기경 문장,1960~70년대 외환 매매 증명서와 여권,길이 4.2m에 달하는 행렬용 추기경 망토 등 다양한 유품을 만나볼 수 있다. 고인이 입었던 여름용 생활한복과 누비저고리,안경,방한용 모자와 목도리,장갑 등에선 금세 체취가 묻어나는 듯하다.
절두산 순교성지 주임사제인 변우찬 신부는 "김 추기경의 유품들을 정리하면서 꼼꼼하면서도 인자했던 성품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면서 "친필원고를 몇 번이나 빨간 펜 등으로 첨삭한 흔적에서 누구도 당신 말씀으로 상처받지 않고 힘을 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사랑하신 뜻을 알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전국의 성당과 관련 기관에서는 고인을 기리는 추모미사를 비롯한 각종 추모행사가 열렸다. 이날 저녁 7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추모미사에서 정진석 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고인은 추기경,대주교,사제이기 전에 따뜻하고 여린 마음을 지닌 한 사람이었다"며 "존재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됐던 추기경님이 그래서 더 그립다"고 추모했다.
이날 추모미사에는 오스발도 파딜랴 주한 교황대사,김희중 대주교,장익 · 염수정 · 강우일 주교 등 20여명의 주교단과 사제,수도자,신자 등 2000여명이 참석했고,성당 마당과 꼬스트홀에서도 대형 스크린을 통해 미사가 진행됐다.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이날부터 내달 28일까지를 공식 추모 기간으로 정한 가운데 김 추기경이 사제서품을 받은 대구대교구 계산성당,첫 부임지인 안동교구 목성동성당,고인이 투병하다 선종한 서울성모병원,고인이 묻힌 용인 성직자묘역 등에서도 추모미사와 행사가 열렸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유신정권에 대한 학생 · 지식인 등의 저항이 거세지던 1972년,김수환 추기경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 같은 내용의 편지를 썼다. 47세의 나이로 세계 최연소 추기경에 임명된 지 3년째 되던 해였다.
편지에서 김 추기경은 네 가지를 촉구했다. 복역 중이거나 사건이 계류 중인 학생들의 사면 또는 소 취하와 복학,구속 또는 복역 중인 지식인 · 근로자들에 대한 석방 및 소 취하,대학의 자율적 운영과 대학 내 사복경찰과 정보원 철수 등이었다.
김 추기경의 선종(善終) 1주기인 16일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데 앞장섰던 고인의 이 같은 손길이 고스란히 담긴 친필원고들이 공개됐다. 이날 오전 서울 합정동 절두산 순교성지 내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에서 개막한 유품전에서다.
편지에서 김 추기경은 정중하고도 단호하게 민주화 조치를 요구했다. 첨삭 가필한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어 시국에 대한 그의 고민을 엿보게 한다. 또 1975년 신학생 피정 후 했던 강연 원고에서는 "가장 큰 사랑으로 자신에게 얽매이지 않고 자신을 남의 행복을 위해 서슴없이 내줄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큰 자유인"이라며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한 그리스도는 가장 큰 자유의 사람이었다"고 강조했다.
5월23일까지 계속되는 유품전에는 제의 · 제구 · 개인 소지품 등 140여점의 유품들이 전시된다. 고인이 공부하고 기도할 때 썼던 기도서와 미사성가집,로마예식서,미사경본,각종 사전,독일 뮌스터대 유학 시절 학생증과 학생기록부,용돈 기입장,주교 · 대주교 · 추기경 임명 칙서와 추기경 문장,1960~70년대 외환 매매 증명서와 여권,길이 4.2m에 달하는 행렬용 추기경 망토 등 다양한 유품을 만나볼 수 있다. 고인이 입었던 여름용 생활한복과 누비저고리,안경,방한용 모자와 목도리,장갑 등에선 금세 체취가 묻어나는 듯하다.
절두산 순교성지 주임사제인 변우찬 신부는 "김 추기경의 유품들을 정리하면서 꼼꼼하면서도 인자했던 성품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면서 "친필원고를 몇 번이나 빨간 펜 등으로 첨삭한 흔적에서 누구도 당신 말씀으로 상처받지 않고 힘을 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사랑하신 뜻을 알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전국의 성당과 관련 기관에서는 고인을 기리는 추모미사를 비롯한 각종 추모행사가 열렸다. 이날 저녁 7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추모미사에서 정진석 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고인은 추기경,대주교,사제이기 전에 따뜻하고 여린 마음을 지닌 한 사람이었다"며 "존재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됐던 추기경님이 그래서 더 그립다"고 추모했다.
이날 추모미사에는 오스발도 파딜랴 주한 교황대사,김희중 대주교,장익 · 염수정 · 강우일 주교 등 20여명의 주교단과 사제,수도자,신자 등 2000여명이 참석했고,성당 마당과 꼬스트홀에서도 대형 스크린을 통해 미사가 진행됐다.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이날부터 내달 28일까지를 공식 추모 기간으로 정한 가운데 김 추기경이 사제서품을 받은 대구대교구 계산성당,첫 부임지인 안동교구 목성동성당,고인이 투병하다 선종한 서울성모병원,고인이 묻힌 용인 성직자묘역 등에서도 추모미사와 행사가 열렸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