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는 지난해 8월 미용 목적의 성형수술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매기는 내용의 관련 법 개정안을 내놨다. 치료 목적이 아닌 지방흡입술 안면윤곽술 등 성형수술 서비스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면세(免稅) 규정이 국제조세 관행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도 의료 목적이 아닌 미용 목적의 성형수술과 애완동물을 진료하는 것에 대해서까지 부가세를 면제해주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재정부가 마련한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국회 기획재정위 조세소위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조세소위 소속 국회의원 상당수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성형수술에 10%의 부가세를 매기면 그만큼 수술비용이 올라 고객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를 성형외과 업계에서 제기했는데 아무래도 이런 주장이 국회 논의 과정에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전했다. 법안이 제출되자마자 대한성형외과학회,대한성형외과의사회 등이 일제히 반발했다. 재정부는 2월 임시국회에 다시 한번 개정안을 제출한다는 방침이지만 이번에도 통과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눈치다.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이른바 '전문자격사'를 대상으로 한 정부 정책이 잇따라 표류하고 있다. 세제개편은 물론이고 자격사 업계의 진입장벽을 없애려는 정부의 시도가 자격사업계의 집단반발이란 '벽'에 가로막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격사 간 '밥그릇' 싸움으로 아예 법 시행시기가 늦춰진 사례도 있다. 재정부가 올해 초 마련한 상속 · 증여세법 일부 시행령 개정안이 그것.당초 재정부는 비상장주식 등으로 상속 · 증여를 할 경우 재산 평가를 담당하는 기관을 종전 회계법인 외에 세무법인을 새로 추가하는 내용의 시행령을 마련,연초부터 시행할 예정이었다. 회계사가 독점하고 있는 상속 · 증여재산 평가업무의 진입장벽을 세무사에게도 개방해 경쟁을 유도하고 납세자의 편의를 높이자는 취지에서였다. 하지만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공인회계사협회가 '파이'가 줄어들 것을 우려해 반발하면서 국회를 상대로 치열한 로비를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급기야 재정부는 올해 초 시행 방침을 바꿔 2011년 1월1일 이후로 시행시기를 1년 연기했다.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서비스업 선진화 계획'에 따라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전문자격사 제도 개선방안도 마찬가지다. 이 방안은 변호사,약사,회계사,세무사 등 고소득 전문직종의 높은 진입장벽을 없애고 경쟁을 유도한다는 계획.재정부는 일자리 창출과 내수시장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 11월 말 이틀간 각 업종별 제도개선 방안을 다루는 공청회를 여는 등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 범정부 차원의 개혁안을 확정 · 발표하고 관련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새해 들어 부처 협의조차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태다. 재정부 관계자는 "자격사시장 개혁문제는 변호사,약사 등 힘센 이익단체들이 많기 때문에 복지부,법무부 등 소관부처를 통해 1단계로 설득작업을 벌이고 있다"며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정부 내부에선 각 자격사단체를 설득하더라도 국회에 올라가면 또다시 보류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상반기 처리는 사실상 물건너 갔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주훈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원장은 "자격사 시장개혁은 십수년째 시도했다가 무산되기를 거듭하는 난제"라며 "강력한 개혁 추진기구를 만들어 가시적 성과를 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종태/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