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선택 없는 '고교선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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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떡을 만들어 놓고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결과를 보니 완전히 참담하다. "(학부모 김성헌씨) "차라리 작년까지 시행된 고교배정이 근거리 배정이라는 점에서는 더 나았다. "(학부모 박지숙씨)
지난 11일 서울시교육청이 첫 고교선택제를 적용한 배정 결과를 발표한 뒤 시교육청 게시판에는 비난의 글이 쏟아지고 있다. 원하는 학교에 자녀를 보내지 못한 학부모들의 성난 목소리다. 고교선택제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학교는커녕 되레 집과 멀리 떨어진 학교에 배정됐다는 불만이 주류다.
이런 목소리에 대해 시교육청 직원들은 배정 이후에 으레 있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항의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한 시교육청 관계자는 민원실에 쏟아질 항의를 예상이나 한 듯 "직원들에게 오늘 아침 출근할 때 전투복 입고 투구 쓰고 오라고 했다"고 여유있게 농을 던졌다. "학부모들이 자녀 일로 화가 나면 상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100% 학생과 학부모를 만족시키는 고교 배정은 없다. 언제나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는 학교는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고교선택제 도입과정에서 시교육청은 여러 차례 학부모들의 '약'을 올렸다.
자율선택이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3단계 강제배정에 근거리 원칙을 뒤늦게 추가했다. '1,2단계 선택과정에서 지망한 4개 학교를 고려하되 가급적 근거리에 배정한다'는 이 원칙에 학부모들은 "한 시간 통학거리를 감수하고라도 원하는 학교를 다니겠다고 지망한 건데 근거리 배정 원칙이 왜 고려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인기학교 학부모들의 항의를 고려한 눈가리고 아웅 조치였다는 지적이다.
예고없이 추가된 것으로 드러난 강남 · 북 간 이동 불가 원칙도 고교선택제 취지를 흐렸다. 일례로 용산구의 한 고교는 운동부 학생이 많아 인기가 없다. 이 학교에 미달된 인원을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는 강남 학생들로 채울 수도 있지만 시교육청은 강북에서만 채우기로 했다. 강남 학부모들의 항의 때문이었다.
이런 저런 요소를 고려하고 나니 결국 대다수 학부모들이 생각했던 '선택제'는 사라지고 누더기가 남았다. "속았다"는 불평이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시교육청이 정책의 공정성과 예측가능성을 상당 부분 포기한 탓이 크다. 쏟아지는 민원을 귓등으로 흘려들을 게 아니다.
이상은 사회부 기자 selee@hankyung.com
지난 11일 서울시교육청이 첫 고교선택제를 적용한 배정 결과를 발표한 뒤 시교육청 게시판에는 비난의 글이 쏟아지고 있다. 원하는 학교에 자녀를 보내지 못한 학부모들의 성난 목소리다. 고교선택제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학교는커녕 되레 집과 멀리 떨어진 학교에 배정됐다는 불만이 주류다.
이런 목소리에 대해 시교육청 직원들은 배정 이후에 으레 있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항의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한 시교육청 관계자는 민원실에 쏟아질 항의를 예상이나 한 듯 "직원들에게 오늘 아침 출근할 때 전투복 입고 투구 쓰고 오라고 했다"고 여유있게 농을 던졌다. "학부모들이 자녀 일로 화가 나면 상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100% 학생과 학부모를 만족시키는 고교 배정은 없다. 언제나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는 학교는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고교선택제 도입과정에서 시교육청은 여러 차례 학부모들의 '약'을 올렸다.
자율선택이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3단계 강제배정에 근거리 원칙을 뒤늦게 추가했다. '1,2단계 선택과정에서 지망한 4개 학교를 고려하되 가급적 근거리에 배정한다'는 이 원칙에 학부모들은 "한 시간 통학거리를 감수하고라도 원하는 학교를 다니겠다고 지망한 건데 근거리 배정 원칙이 왜 고려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인기학교 학부모들의 항의를 고려한 눈가리고 아웅 조치였다는 지적이다.
예고없이 추가된 것으로 드러난 강남 · 북 간 이동 불가 원칙도 고교선택제 취지를 흐렸다. 일례로 용산구의 한 고교는 운동부 학생이 많아 인기가 없다. 이 학교에 미달된 인원을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는 강남 학생들로 채울 수도 있지만 시교육청은 강북에서만 채우기로 했다. 강남 학부모들의 항의 때문이었다.
이런 저런 요소를 고려하고 나니 결국 대다수 학부모들이 생각했던 '선택제'는 사라지고 누더기가 남았다. "속았다"는 불평이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시교육청이 정책의 공정성과 예측가능성을 상당 부분 포기한 탓이 크다. 쏟아지는 민원을 귓등으로 흘려들을 게 아니다.
이상은 사회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