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서울시내 한 고등학교에서 A형간염이 집단으로 발병한데 이어 여의도 금융가에도 A형간염이 무서운 속도로 번졌다. 당시 S증권사는 'A형 간염 예방 주의보'를 발령하고 전직원을 상대로 예방접종을 실시하기도 했다.

일부 증권사 직원들은 A형간염 증세가 심해지면서 간이 기능을 제대로 못하는 간부전으로 악화, 사망하는 일까지 종종 벌어졌다. 간접투자 임무를 맡고 있는 한 펀드매니저도 이때 가까운 직장동료를 잃고 말았다. 간이식 대기자로 이름만 올린 채 끝내 버티지 못하고 사망한 것이다. A형 간염의 치사율은 0.1% 미만이지만, 이처럼 드물게 전격성 간염이 발생하면 간이식만이 유일한 치료법일 수 있다.

이 펀드매니저는 허무하게 동료를 잃은 안타까운 마음에 우리투자증권 모 애널리스트와 함께 간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생인공간' 개발사인 라이프리버를 찾아갔다. 그리고 이들은 이 곳에서 본 바이오 인공간의 성공 가능성을 세상에 알리기(기업탐방리포트 '간이식을 대체할만한 기술보유', 1월15일) 시작했다.

◆간 없는 돼지, 인공간으로 12시간째 '생존'

2010년 2월3일 오후 3시.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있는 삼성서울병원 별관 암센터 지하4층에서 무균돼지를 대상으로 한 막바지 인공간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돼지는 삼성생명과학연구소가 직접 마련한 실험동물연구센터 실험실에서 선명한 수술 자국을 드러내고 누워있었다. 간을 완전히 떼어냈기 때문이다.

이 실험실은 삼성서울병원이 중환자실을 그대로 모방해 만들었다. 앞으로 돼지가 아니라 실제 간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돼지의 간을 적출하고, 바이오 인공간 장치인 라이프리버(Lifeliver)를 달아 얼마 동안 버틸 수 있는 지 여부를 최종 판단하기 위해 막바지 실험을 진행중입니다. 간 적출 이후 지금까지 12시간째 살아있네요. 이 실험은 작년부터 지금까지 수십 차례 반복되고 있지만, 완벽한 간질환 치료를 위해서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까지 잡아내려고 매주 반복하고 있습니다" 코스닥 상장사인 에이치엘비의 100% 자회사인 라이프리버의 최수환 대표이사 사장의 설명이다. 그는 10여년간 인공간 개발에만 매달려왔고 최근 그 결실을 보고 힜다.

최 사장은 1992년부터 1997년까지 5년간 동국대 생명화학공학과 박정극 교수와 함께 과학기술부 지원을 받아 '간세포 분리 및 구상체 배양 기초'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이어 2002년까지 '구상체 배양 및 고정화 기술'에 대한 공동 연구를 수행한 뒤 2001년 1월 마침내 삼성서울병원, 동국대, 부경대와 공동으로 인공간 개발에 합의했다.

이렇게 오랜 개발기간을 거쳐 탄생한 차세대 바이오 인공간이 '라이프리버'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것은 2005년 8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민원후견인으로 지정된 뒤부터다. 인공간은 2007년 전임상 독성 시험을 마쳤고, 2008년 5월 임상시험을 위한 계획승인을 신청, 같은해 10월 임상허가까지 잇따라 받았다.

◆환자 6명 대상 임상실험 '눈앞'…늦어도 3월초 진행

돼지가 아닌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인공간 임상은 빠르면 이달말 진행될 예정이다.

최 사장은 "환자에게 인공간의 안정성과 유효성을 검증하는 임상 단계는 빠르면 이달말 진행될 수 있다"며 "늦어도 3월 초에는 전격성 간부전 환자 및 간이식 대기자에게 간기능 회복을 위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간에 대한 임상허가는 2009년 10월 식약청이 승인했다. 인공간에 대한 임상 허가를 받은 곳은 미국 유럽 등 몇 개국을 제외하곤 전무하다. 라이프리버의 인공간 임상은 국내에선 최초이며, 아시아에서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다.

이번 임상은 1상과 2상이 동시에 진행될 계획이다. 임상 1상에서 독성 및 안정성을, 임상 2상에서 유효성을 각각 확인하게 된다. 임상 1, 2상이 완료되면 희귀의약품으로 조건부 허가를 받게 되며, 판매가 가능해진다.
이두훈 라이프리버 박사는 "임상은 삼성서울병원에서 구축한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시설에서 본임상이 진행될 것"이라며 "세계적인 바이오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인공간을 개발하고 있으나, 아직 뚜렷한 성과나 시판허가를 받은 제품은 전무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특히 라이프리버의 인공간은 효율성이 가장 뛰어나 세계 최초로 시판허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어 그는 "10여년간 150억원을 투자해 개발한 인공간은 국내 간이식분야에서 최고 권위자인 삼성서울병원 이석구 교수와 동국대학교, 부경대학교 과학자들이 공동으로 개발한 것"이라며 "이 제품은 A형 간염 등의 원인으로 급성 간부전까지 악화되어 간이식을 필요로 하는 환자의 간이식대기 기간을 연장시켜주거나 환자 자신의 간이 회복되는 것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의료기기와 세포치료제의 조합의약품(Combination Product)"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등 세계 시장 진출이 더 큰 '목표'

최 사장은 <한경닷컴> 기자와 인터뷰 도중에도 인공간 관련 업무 전화로 쉴 새 없이 바빴다. 중국 제약업체들로부터 인공간 관련 문의가 날마다 빗발치고 있기 때문이다.

최 사장은 "당장 내일(2월4일) 인공간 임상과 관련해 중국의 모 제약회사를 방문해야 한다"며 "식약청으로부터 인공간 임상 허가가 난 뒤 중국 제약회사와 세포치료제 업체들로부터 미팅 문의가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인공간 임상이 연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내년에 시판이 가능해지면 1차 목표인 국내 간질환 치료에서 더 나아가 국내시장의 100배 규모에 이르는 중국시장에 진출하는 게 2차 목표"라고 말했다. 라이프리버의 인공간은 제품 특성상 의료기기도 되고 의약품도 되기 때문에 시장 진출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게 최 사장의 판단이다.

최 사장은 "국내 최초로 임상허가를 받아 실제 환자에게 인공간을 적용할 수 있게 된 만큼 수많은 간질환 관련 치료제를 만들고 있는 중국 및 미국 업체들의 관심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며 "인공간 개발에 있어 선발주자인 선진국들까지 라이프리버의 인공간 효율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어 세계 최초로 라이프리버의 인공간이 시판될 경우 그 파급효과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라고 기대했다.

◆전격성을 넘어 말기 간부전 치료에 도전하다!

라이프리버의 마지막 도전은 말기 간부전 환자까지 모두 치료하는 것이다. 현재 라이프리버의 치료대상은 전격성 간부전 환자 및 간이식 대기자 등 생명연장이 당장 시급한 환자들이다.

이에 따라 인공간 1회 치료 비용은 간이식 비용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3000만원 정도가 될 전망이다. 최 사장은 "환자당 1회 치료가 보통이나 상황에 따라 연속 2회 치료도 불가피할 수 있어 비용이 싼 것은 아니다"면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빠르게 움직여야 많은 간질환 환자들이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라이프리버의 인공간이 전격성 및 간이식 대기자들만 치료할 수 있는 이유는 인공간에 탑재된 간세포가 인간 간세포가 아닌 무균돼지로부터 분리해 낸 돼지 간세포이기 때문. 라이프리버의 인공간은 여지껏 실험을 통해 최장 2주 가량 인간의 간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 사장은 그러나 "전격성 간부전 환자의 경우 인공간이 실제 간기능을 대신해 주는 동안 몸속에서 본래 간이 휴식을 취하면서 스스로 간기능을 회복하는 경우도 꽤 많아 생존 확률은 획기적으로 높아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라이프리버는 앞으로 5년내 만성 및 말기 간부전 환자들을 치료하는 게 마지막 목표다. 이 회사는 이를 위해 2005년부터 인공간 개발과 동시에 줄기세포 연구를 병행해오고 있다. 연구성과는 기대했던 수준보다 빨리 진행되고 있어 현재 전체 연구중 70% 수준까지 와 있다고 최 사장은 귀띔했다. 그는 "라이프리버는 간세포를 분화시키는 원천기술을 갖고 있다는 게 가장 큰 강점"이라며 "장기적으로 인간의 줄기세포를 이용해 인공간을 만들어 모든 간질환 환자치료에 적용하는 게 마지막 연구단계"라고 덧붙였다.

사실 최 사장은 1997년 라이프코드라는 회사를 설립해 애초부터 줄기세포 연구에 뛰어든 줄기세포 연구 1세대다. 그는 또 아시아 최초로 제대혈 은행을 설립한 경영자로도 유명하다. 이후 메디포스트, 차병원, 보령제약 등 제대혈업체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자 간세포 치료제인 인공간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이렇게 인공간 시장에서도 여전히 1세대로 살고 있는 최 사장은 인간세포를 적용한 인공간을 개발해 2세대 인공간 시대까지 직접 열어 제치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한편, 라이프리버의 국내 잠재시장 규모는 약 10조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도 단기적으로도 급성간부전환자와 간이식 대기자 수요를 감안할 때 이미 1500억원 시장에 진입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질병관리본부 등 관련업계는 전세계 인구의 10%인 5억명 정도가 간질환 환자이며, 미국내 약 500만명이 C형간염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경우 400만명이 B형간염 환자이며, 간이식 대기자수는 약 2760명(2009년 3월 현재)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A형간염은 작년 한 해 동안 감염자가 전년대비 두 배 가량 늘어나는 등 매년 급증하고 있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