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30일 단행된 북한 화폐개혁을 둘러싸고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암시장 물가의 폭등과 주민 불만 고조 등의 혼란스러운 결과로 인해 최근 계획재정부장 박남기가 해임되고,김영일 내각 총리가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친 김에 군부와 당의 대규모 후속 인사도 진행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은 왜 이리도 무모하게 화폐개혁을 시도했을까. 계획경제 복귀를 위해 장롱 속 화폐를 끌어내려 했다는 해석은 너무 단편적이다. 구화폐와 신화폐를 100 대 1의 비율로 바꾸고,교환할 수 있는 구화폐의 양을 제한한 상황에서 시중자금 회수 의도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시중 화폐를 흡수하려 했다면 화폐개혁 이후 대량의 새 화폐를 주민들에게 무상 배분한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또 경제난의 와중에서 계획경제로의 완전 회귀는 어렵다는 점을 모를 정도로 북한 지도부가 무지하지도 않다. 이번의 새 화폐 정책은 북한 경제의 변화 조짐이다. '개혁개방'을 위한 첫 단추인데,조건이 미비한 까닭에 순탄치 못한 것이다.

2002년 7월의 경제관리개선 조치 이후 더 나아가지 못했던 북한의 개혁 행보로 인해 시장 물가와 계획 가격은 너무 크게 벌어졌고,계획부문에서 관리해야 할 물자들이 암시장과 중국으로 빠져나가 공식경제는 갈수록 위축됐다. 장사 기회를 잡은 주민과 그렇지 않은 주민 간의 소득격차는 정치적 불안을 야기할 정도로 벌어졌다. 북한은 작년 가을부터 조성된 북 · 미 접촉 분위기와 10월 중국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남북정상회담 가능성 등을 계기로 새 경제정책을 위한 주변 환경이 무르익었다고 판단하고 화폐개혁부터 시작했다. 최근 북한이 외자유치에 발 벗고 나선 것도 이 맥락이다. 기대효과는 시장과 계획가격 격차 제거를 통한 계획경제의 정상 가동,계층 간 소득격차 축소,암시장을 포함한 사경제 질서의 관리 등이다.

문제는 북한이 새 조치를 소화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경제개혁은 단편적인 정책으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980년대 개혁 초기 중국의 성공은 사기업의 발전에 의존했다. 심지어 농업개혁 역시 사기업과 유사한 농촌의 '향진기업'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성공할 수 없었다. 북한은 화폐개혁 조치와 함께 사기업과 유사한 기능의 새로운 기업을 허용했어야 한다. 또 농지 사용권도 가족단위로 과감하게 분배해야 한다. 적어도 신의주와 나진선봉 개성에는 외자기업이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기업의 이름을 걸고 북한 당국이 나서서 추진하는 외자유치 방식은 곤란하다. 공급경제 측면의 개혁이 동시에 추진돼야 하는 것이다. 이번 화폐개혁 이후 일시적으로 급등하고 있는 암시장 물가에 겁먹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주민 불만 무마용으로 지폐만 마구 찍어 나눠줘서는 곤란하다. 차분한 후속조치가 따라야 한다. 기왕에 시작한 인사 개편은 외부 사정에 밝은 실무형 인재들로 채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개혁개방'이라는 어휘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스스로는 무엇이라 부르든 새로운 경제정책을 위해 이번 기회는 반드시 살려야 한다. 최근 김정일도 스스로 탄식했듯이 21세기에 먹는 문제를 걱정해서는 민족의 역사에 부끄러운 일이다. 한국도 북한이 새로운 방향으로 경제정책을 돌린다면 북한을 돕기 위한 환경조성에 적극 나설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이 사기업과 외자 투자를 허용한다면,생산라인이 가동될 때까지 소비재 차관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공급증대야말로 북한의 변신을 보장할 수 있는 관건이기 때문이다. 6자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추진돼 북한 동포들에게 빛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오승렬 < 한국외대 교수·중국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