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마주보고 자동차를 몰다 한쪽이 겁에 질려 핸들을 꺾어야 끝나는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양국은 지난달 말 이후 불과 12일 동안 전기담요,닭고기,선물용 리본 등을 두고 최고 231%의 보복관세를 주고 받으며 갈때까지 가보자는 기세로 싸우고 있다. 위안화 환율,보호무역,달라이 라마,대만 무기판매,구글 등등 양국 충돌의 키워드는 시간이 흐를수록 쌓여가는 중이다. "중국이 이란에 대한 제재에 동참하지 않으면 외교적 고립이 불가피하다"(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보유 중인 미국 국채를 팔아 미국을 응징해야 한다"(뤄위안 중국 군사과학원 소장) 등의 격앙된 협박도 난무한다. '팍스 아메리카'(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유지하려는 미국과 '유소작위(有所作爲 · 할 일은 한다)'로 무장한 중국 간 글로벌 헤게모니 싸움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약진하는 중국

글로벌 금융위기는 중국의 위상을 'IMF(국제통화기금)를 대체한 나라'로 만들었다. 금융위기 발발 직후인 2008년 말을 전후해 한국 등 6개국은 필요할 경우 자금을 융통할 수 있도록 6500억위안(약 110조원)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중국과 체결했다. 최근 국가부도 사태에 직면한 그리스 역시 IMF가 아닌 중국에 채권 매입을 요청했다. 사실상 중국이 IMF 역할을 한 셈이다. 중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작년 하반기부터 위안화 무역결제를 실시,미 달러화의 위상에 흠집을 내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아프리카 남미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를 '중국 라인'으로 만드는 중이다. 아프리카엔 채무변제와 경제적 지원,동남아와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남미의 베네수엘라 등과는 기술이전과 자금지원,중앙아시아와는 상하이협력기구를 통한 협력체 구축 등 막강한 친중국 기반을 만들었다. 또 세계를 대상으로 한 자원사냥에 이어 국부펀드인 CIC(중국투자공사) 등을 앞세워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등의 지분을 대규모 인수하고,포드의 볼보를 사들이는 등 신질서를 창출하고 있다. 20년 이상 국방비를 매년 두 자리 숫자씩 늘려 군사대국화도 추구하고 있다. 중국 군부는 장거리 미사일 개발,항공모함 구축 등에 이어 "우주에 군사용 무기를 배치하겠다"(쉬치량 공군사령관)고 선언한 상태다.

◆급박해진 미국

미국에 중국은 2009년을 전후로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됐다. 2008년까지만 해도 미 재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하면 위안화 환율 문제가 자동적으로 의제에 올랐다.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중국 정부가 '알아서 기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겉으로는 미국은 중국에 두려운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란 핵 제재,온실가스 감축을 둘러싼 국제공조 등에서 미국 입장에 어깃장을 가장 많이 놓는 나라가 중국이다. 작년 11월 취임 후 처음 중국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찬밥 신세였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푸대접을 받았다. 게다가 경제회복을 위해 수출을 늘리겠다는 오바마 정부의 승부수는 '저평가된 위안화'란 장애물에 걸려 있다.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를 유지하고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벗어나려면 '슈퍼강국 중국'이 아니라 '통제가능한 중국'이 필요하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고 나선 것은 중국을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복잡한 '10-10 함수'

양국의 갈등은 복잡하게 꼬여 있다. '성장률 10%(중국)'와 '실업률 10%(미국)'의 함수가 걸려 있어서다. 중국은 일자리를 늘리고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려면 10%대의 고도 성장을 유지해야 한다. 고성장을 위해선 수출 증대가 필요하고 이는 미국 시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10%의 실업률에 허덕이는 미국으로선 당장 내수시장 활성화가 어려운 만큼 수출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13억명의 중국시장은 절대적 위치를 차지한다. 미국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여전히 차이나 머니가 필요하기도 하다.

문제는 양측이 서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정치논리에 의한 헤게모니 싸움이 가열되고 있다는 점이다. 핵 전쟁을 하면 모두 망한다는 '상호확증파괴 이론'은 지금 G2 간 갈등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작년 2월 방중 때 클린턴 장관은 양국 관계를 한자 성어인 '동주공제(同舟共濟 · 한 배를 탄 운명)'로 설명했다. 위기 극복을 위해 손을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위기에 빠진 지구촌을 구하기 위해선 '동주공제'의 글로벌 리더십이 절실하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