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쿠폰 ·안식월·자격증 교육… 대기업 보다 이직률 낮아
"일 배워서 기업과 함께 성장할 마음이 있다면 왜 안 오겠느냐."
대다수 고학력 청년 구직자와 중소기업이 벌이고 있는 팽팽한 줄다리기다. 한마디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만으로 당당히 중소기업을 택해 꿈을 실현해가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
경기 안산의 PCB 표면처리 전문기업 케이피엠테크.이 회사 연구소에서 표면처리 약품 개발 업무를 담당하는 정보묵 대리(35)는 2002년 고려대에서 신소재공학 석사 학위를 받고 병역특례로 이 회사에 들어왔다. 처음엔 외환위기가 끝나가던 무렵이라 대기업에서는 병역특례를 뽑는 곳을 찾기 어려워 택한 궁여지책이었다. 정 대리는 그러나 2004년 케이피엠테크에 몸을 담기로 결심했다. 그해 굴지의 S사에도 합격했지만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는 "대기업에 취업해 현재 과장급인 선배나 친구들은 40세도 안 된 나이인데 벌써 '자리' 걱정을 하고 있더라"며 "최근 들어 친구들이 대기업 못지않은 연봉을 받으면서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나를 오히려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핸드백 전문회사 시몬느의 이민수 기획팀장(38)도 대기업에 입사한 대다수 대학(연세대 독문학) 동기들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거대 조직에서 부속품 같은 삶을 사느니 한번에 여러 일을 익힐 수 있는 중소기업에 마음이 끌렸던 것.부모와 아내는 물론 친구들의 반대까지 무릅쓰고 입사를 결정했다. 그는 무엇보다 CEO와 함께 업무를 논의하고 추진할 수 있어 경영 전반을 빨리 배울 수 있는 것을 중소기업 근무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았다. 이 팀장은 "대기업이라고 무작정 선호하는 것보다는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고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해 '신바람나고 매력적인 일터'로 변신하려는 중소기업들도 최근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전문회사인 MDS테크놀로지.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 있는 이 회사는 회사 내에 직원 전용 카페테리아를 설치한 것은 물론 신입사원이 입사한 지 1년이 되면 휴가쿠폰,상품권 등 다양한 선물이 들어 있는 유리잔을 놓고 '입사 1년 돌잡이' 행사를 열어준다. 근속에 대한 감사 표시인 셈이다. 김현철 대표는 "사원을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며 "이직률이 높은 게 IT업종의 특징임에도 눈에 띌 만한 이직 사례가 없는 게 회사의 자랑거리"라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이 회사의 최근 신입사원 선발 경쟁률은 100 대 1에 육박하기도 했다.
스마트폰용 앱스토어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컴투스도 신세대 직장인들의 자유분방한 성향을 살린 톡톡 튀는 사내 복지제도로 주목받고 있다. 사무실 냉장고에는 항상 과일과 샐러드가 꽉꽉 채워져 있고,출퇴근 시간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플렉서블제로 운영된다. 한 달에 한번 디자이너팀을 위해선 누드모델 크로키 행사를 열어 '창의성'을 북돋워 주기도 한다. 직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한 달간의 안식월.5년 일하면 한 달씩 확실히 쉴 수 있다.
삼정피앤에이는 자기계발 지원에 적극적이다. 회사가 사원과 함께 커간다는 것을 입증해준다는 게 기본 모토다. 2005년 국내 처음으로 사내 기술자격증 제도를 도입한 이 회사는 최근 전 직원 563명 중 168명이 국가자격증인 기계정비 산업기사를 따내는 성과를 일궈냈다. 직원들 스스로 사내강좌를 들으며 주경야독한 결과다. 사내에는 동영상 강좌 등 기술분야별 강좌가 60여개나 무료로 개설돼 있다. 이직률이 제로에 가까운 것은 물론이다.
취업포털 인크루트 관계자는 "청년실업이 아무리 심각하더라도 기업과 함께 자신을 키우려는 도전정신만 갖추고 있다면 정말 괜찮은 중소기업은 수두룩하다"며 "우수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또 대기업으로 커나가는 비결은 이런 정신을 지닌 직원들의 패기와 일할 맛 나는 일터를 만들려는 CEO의 철학이 찰떡궁합처럼 맞아떨어진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임기훈/이관우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