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스마(charisma)라는 용어는 기원후 50~62년 사이에 쓰인 사도 바울의 서신에 처음 등장한다.

사도 바울은 카리스마라는 말을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이는 여러 문서나 서간에서 '은사'로 번역됐다. 그리스어 카리스(charis)에서 비롯된 이 말은 영어권 신학자들 사이에서 '카리즘(charism)'이 되었다가 19세기에 '카리스마'로 바뀌었다. '

'신의 은총으로 얻는 영적이고 초자연적인 능력'이라는 뜻의 종교적인 용어였던 카리스마가 개인의 특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된 시기는 불과 100년도 채 되지 않는다.

존 포츠 호주 맥쿼리대 교수는 《카리스마의 역사》를 통해 신앙에서 출발해 세속적으로 쓰이게 된 카리스마의 2000년 변천사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사도들이 치료나 예언 등 성령이 내린 능력을 갖춘 것으로 인정됐다. 바울은 이런 사도의 영적 능력들을 '카리스마'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교회가 초자연적 능력보다 성서와 교리,주교의 권위에 기댄 체계를 잡아가면서 카리스마라는 말은 점차 잊히게 됐다.

'카리스마'를 부활시킨 것은 막스 베버(1864~1920)였다. 그가 '카리스마적 권위'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은 20세기 초다. 특별한 재능이라는 점은 같지만 종교적 색채는 거의 없어졌다는 게 차이점이다. 오히려 지도자적 권위나 재능보다 정치인 개인의 매력과 자질을 가리키게 됐다.

1960년대 자신감과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TV에 등장해 대중을 사로잡은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대표적인 예다. 미 대선에서 승리한 버락 오바마의 성공도 여기에 오버랩된다. 상대 후보에 비해 매우 불리했던 후보가 카리스마적 자질로 폭넓은 지지와 미디어의 시선을 한몸에 받을 수 있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이 밖에 히틀러와 마틴 루터 킹,다이애나 비 등을 얘기할 때도 카리스마는 어김없이 인용되는 용어다.

저자는 2000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카리스마에 매혹당하는 이유를 '신비로움'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현대인들이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나 스타를 바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는 특히 대중문화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TV 연예인 선발 프로그램은 최고 수준의 재능을 보여주는 천재를 발굴하며 기뻐하고,공상과학소설은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영웅들을 통해 이 개념을 확대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카리스마는 타고난 재능의 결과인가? 저자는 이 부분에 판단을 보류한다. 카리스마는 '이성과 신앙 사이에 걸쳐 있는,알 수 없는' 힘을 스스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오랜 시간 연구하고 고민한 흔적이 방대한 양의 참고도서 목록과 주석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책이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