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지법의 한 단독판사가 중학생 등 180명을 빨치산 추모제에 데려가 반국가적 의식화 교육을 한 전교조 소속 교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다. 하기야 요즈음 사법부의 잇단 무죄판결들을 보면,'귀에 걸면 귀걸이,코에 걸면 코걸이'를 방불케 할 정도로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기준을 갖고 유무죄를 가늠하는,이른바 '카프카적인 상황'이다. 카프카의 《심판》을 보면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판사의 얼굴조차 보지 못한 채 판결을 받아 죽임을 당하는 수수께끼와 같은 재판이어서 '카프카적(Kafkanesque)'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추모제에서 학생들은 빨치산 출신 장기수들을 '훌륭한 분'이라고 표현한 편지를 낭독하고 "전쟁 위협하는 외세를 몰아내고 우리민족끼리 통일하자"는 등 구호를 외쳤다. 그럼에도 담당판사는 "빨치산은 이미 과거의 일에 불과해 국가존립에 실질적 해악성이 없다"고 일축했으니,'카프카적 판결'이 아니고 무엇인가.

검찰은 "법해석을 넘는 입법수준"이라고 비판했지만,담당판사는 아예 국가보안법을 무시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 국가보안법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좌파진보진영은 국가보안법을 대표적인 '악법'으로 낙인찍고 있지만,사실 그 법은 자유민주국가를 세우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건국세력이 떨칠 수 없었던 북한식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반영한다. 민주공화국 수립을 폭력으로 집요하게 방해한 것이 북한 공산주의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기본권을 보장하는 민주사회에는 딜레마가 있다. 그것은 자유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사상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허용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이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자유의 근본적 가치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그 절차와 제도를 이용하여 집권세력이 되었을 때 자유민주주의는 고사되거나 종식될 위기를 맞게 되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결코 '백지상태(tabula rasa)'에서 작동하는 제도는 아니다. 그것은 절차를 중시하고 이성과 설득의 힘을 신봉한다. 하지만 '이성의 힘'이나 '설득의 힘'보다 '폭력의 힘'과 '선동의 효율성'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자유민주주의는 꽃피기는커녕 살아남기조차 힘들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를 모든 가치에서 초연할 뿐만 아니라 모든 주장을 허용할 정도로,'몰가치적'이며 '자유방임적' 독트린으로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빨치산과 싸워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가꿔온 사람들을 친미주의자로 폄훼하고 순진한 학생들에게 왜곡된 역사관을 심어주는 것을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로 정당화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빨치산은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는 '빛의 공동체'를 파괴하고 '어두움의 공동체'를 세우려 했던 세력이다. 이 잘못된 길을 간 사람들을 '훌륭한 분'으로 추모하도록 했다면,'어두움'을 '빛'이라고 부를 정도의 무지이며,그런 무지는 '죄악'이다.

어린 학생들을 데리고 빨치산 추모제에 참석한 전교조 교사도 문제지만,그것을 통일교육의 일부라면서 교사의 손을 들어준 판사는 더 큰 문제다.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빛의 공화국'에 살면서도 무엇이 아쉬워 '어두움의 왕국'을 끊임없이 그리워하고 있는가. 빨치산이 세우려했던 왕국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처럼 지금도 '절대반지'와 같은 위력을 내뿜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부족함 없이 성장한 유복한 집안의 아이가 그 복에 겨워 마약을 하는 행위와 같은 것으로 보아야 하나. 모름지기 사법부는 '어두움의 왕국'보다는 '빛의 공동체'의 수호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