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부터 다음 달 31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작품전을 갖는 미국 여성 원로작가 루이스 부르주아(100 · 사진)는 백수를 넘은 새해에도 붓을 놓지 않고 있다.
기력이 떨어져 붓놀림은 예전처럼 정교하지 않지만 '인생은 사랑,희망,고통,용서를 붓질하는 과정'이라며 하루 너댓 시간씩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프랑스 출신인 그는 '20세기 최고의 페미니즘 작가'로 꼽히고 있다. 1982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회고전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1999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부르주아는 추상에 가까운 조각에서부터 손바느질한 천 조각,드로잉과 설치에 가까운 조각 등 하나의 원칙으로 규정 짓기에는 너무도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넘나들면서 작품활동을 해왔다.
이번 국내 전시회에선 2007년 이후 제작된 드로잉 작품들을 주로 선보인다. 그의 드로잉 모티브가 과거에는 격자무늬,원,평행선 등 끊임없이 반복되는 추상적인 선들이었다면 최근엔 자연과 모성,여인 등 보다 구체적인 이미지에 시선을 돌린 게 특징이다.
꽃과 여성이라는 소재를 통해 강한 생명력과 함께 욕망과 성을 시각화했다. 열정과 피,그리고 강렬한 감정을 상징하는 빨간색을 주조로 하는 다양한 드로잉 작품은 이상적인 안식처로서의 여성과 모성을 그려내며,나아가 인생의 순환과 인간,자연의 본성에 대한 관심을 재현한 듯하다.
"꽃은 나에게 있어 보내지 못하는 편지와도 같아요. 내 어린 시절 불륜에 빠졌던 아버지,날 버리고 떠난 어머니를 용서해주는 창구입니다. 또한 아버지를 향한 나의 적개심도 사그라지게 하구요. 꽃은 나에게 있어 사과의 편지이고 부활과 보상을 뜻합니다. " (작가 노트에서)
꽃을 통해 작가는 소중한 과거의 기억들을 끄집어 내어 젊은 시절 상흔을 치유하며 안정을 찾아 나아간다는 이야기다.
그는 "종이와 연필이라는 드로잉의 매체 자체가 가져다 주는 친밀함을 바탕으로 마치 자신의 일기를 쓰듯 소소한 내면의 감정과 기억들을 끄집어내 종이에 옮기는 작업을 반복해 왔다"며 "이 같은 행위를 통해 평화와 휴식을 찾고 동시에 치유와 회복을 경험한다"고 술회했다.
'꽃'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서는 드로잉 24점과 설치에 가까운 조각 3점을 만날 수 있다. (02)735-8449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