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6년(선조 19년) 3월13일,전라도 나주 관아에서 노비의 신분을 다투는 소송이 벌어졌다. 원고 이지도는 피고 다물사리가 양인이라 하고,피고는 자신이 노비라고 반박한다. 왜 그랬을까.

임상혁 숭실대 법대 교수가 쓴 《나는 노비로소이다》(임상혁 지음,너머북스)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였던 학봉 김성일이 나주목사로 있었던 시기에 처리한 5건의 판결문을 담은 고문서를 통해 조선시대의 사법 풍경을 복원한 책이다.

소송이 진행되면서 다물사리가 스스로를 노비라고 주장하는 까닭이 밝혀진다. 다물사리는 자기가 성균관 관비의 딸이므로 자신도 관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실관계를 모두 따져본 결과 다물사리는 자기 자손들을 사노비에서 관노비로 바꾸려고 사위와 공모해 성균관에 투탁(投託)한 것으로 밝혀졌다.

투탁이란 세력가나 기관에 몸을 맡기는 행위.다물사리는 후손들을 처우가 혹독한 사노비보다 고통이 덜한 관노비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기록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정교하고도 합리적이었던 조선시대 법 체계와 재판 과정,당대의 법률 용어와 소송 절차,혹독했던 노비제도와 사회상 등을 밝혀내고 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