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전쟁·가난…"우리와 꼭 빼닮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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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진출 첫 베트남 영화 '하얀 아오자이'
다문화 가정 이해 길잡이…흥행 촉각
다문화 가정 이해 길잡이…흥행 촉각
하인 생활이 싫어 도망친 남녀는 하얀 아오자이를 예물 삼아 부부의 연을 맺는다. 그리고 네 딸을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그러나 1950~60년대 베트남은 독립과 전쟁을 겪는 격동의 시기.지독한 가난으로 딸들은 아오자이를 살 돈이 없어 등교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아오자이를 마련하기 위해 부자 노인에게 자신의 젖을 판다. 이어 이보다 더 큰 희생도 감행하는데….
베트남인들에게 순결과 정직을 상징하는 전통 의상을 제목으로 채용한 '하얀 아오자이'(후인 루 감독)가 25일 베트남 영화로는 국내 최초로 개봉된다. 가난과 억압에 굴하지 않은 민초들의 항쟁사를 감동적으로 그려 2006년 베트남에서 50만명을 끌어들이며 그 해 최대 흥행을 기록했다. 중국 금계영화제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는 등 해외에서도 인정받았다.
이 영화는 다문화 가정이 급증하는 국내 현실에 비춰 의미와 가치가 크다. 수많은 베트남 여성들이 한국에 시집와 살고 있는 만큼 한국도 베트남 문화를 알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베트남인들이 우리와 흡사한 역사와 문화를 가졌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1940~50년대 한국이 독립과 분단,전쟁을 겪은 것처럼 영화 속 베트남도 독립과 분단,전쟁을 겪는다.
주인공 '단'과 '구' 부부가 강에서 재첩을 잡아와 파는 장면도 한 세대 전까지 부산의 새벽을 깨웠던 '재첩국 사이소'란 외침을 연상시킨다. 남편은 거리에서 음양오행에 입각한 사주를 본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주인공 어머니의 교육열은 우리네 부모들과 판박이다. 부처님께 소원을 비는 불교식 행위나 어른들을 공경하는 유교적 관습 등도 곳곳에 묻어있다.
영화는 한국에 시집온 베트남 여성뿐 아니라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이해하는 길잡이 노릇까지 해준다. 한국에 시집온 외국여성은 11만명.이 중 베트남 여성은 약 3만명에 달한다. 중국 여성은 7만명이지만 대부분 동포들이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현대자동차 노사는 경주와 울산 지역 다문화 가족을 극장에 초대하는 티켓 구입비로 1000만원씩 협찬했다.
한국에 시집 온 베트남 주부 낭씨는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뒤 "가슴을 치는 영화였다"며 "아이가 있는 엄마여서 감동이 더 컸다"고 말했다.
박연관 청운대 베트남학과 교수는 "베트남의 역사와 베트남인들의 삶을 아름답게 그려낸 수작"이라며 "베트남 영화가 국내에 처음 개봉되는 것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더욱 가까워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작품은 한국영화의 베트남 시장 진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인구 8000만명의 베트남은 연간 영화 관객이 700만명에 불과하다. 그만큼 성장 잠재력이 크다. 연간 100여 편의 개봉작 중 자국영화는 10여 편이고 한국영화는 5~15편이다. 역대 한국영화 중 최고 히트작 '엽기적인 그녀'와 '미녀는 괴로워'는 10만명 이상을 모았고 작년 최대 히트작 '과속스캔들'은 8만명을 기록했다.
액션영화보다 코미디가 베트남인들에게 인기다. 전체 스크린 120개 중 롯데시네마가 3개 극장 12개 스크린을 보유해 미국 자본의 멀티플렉스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스크린을 갖고 있다.
수입사 좋은친구들의 김태형 대표는 "지난 10년간 베트남에 소개된 한국영화는 120편이나 됐지만 한국에서 개봉된 베트남영화는 처음"이라며 "베트남계 2세들에게 어머니의 나라를 제대로 알 수 있게 해주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