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젠테이션이 최고경영자(CEO)들이 꼭 챙겨야 하는 경영 활동으로 떠오르고 있다. CEO의 입을 통해 신제품 관련 설명을 듣고 싶어 하는 소비 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최근 CEO 프레젠테이션의 특징은 화려한 영상 자료다. 딱딱한 제품설명은 소비자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제품 개발 비화,CEO의 개인사 등으로 바뀌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파워 블로거 중 상당수가 CEO 프레젠테이션을 실시간으로 살펴본 뒤 제품에 대한 첫 평가를 내린다"며 "10~20분가량 진행하는 프레젠테이션의 완성도가 제품의 인기와 매출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MWC에서 빛 발한 삼성식 프레젠테이션

신종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은 지난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통신 전시회 'MWC(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2010'에서 CEO 프레젠테이션의 모범답안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모바일 플랫폼 '바다'를 활용해 만든 신제품 스마트폰 '웨이브'를 참가자에게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동원했다.

바닷물이 상자에서 쏟아져 컨퍼런스룸을 채우는 3차원 영상이 첫 카드였다. 유창한 영어는 기본이었다. 다소 느리면서도 또렷한 발음으로 신제품 특성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중간중간 웃음과 손동작을 섞어가며 완급을 조절한 점도 호평받았다. 신 사장의 이날 프레젠테이션 모습은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올라 올 만큼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MWC 프레젠테이션은 3개 조직 소속 스태프 수십명이 한 달여간 준비한 합작품이다. 무대를 꾸미고 영상을 마련하는 업무는 광고 분야 계열사인 제일기획의 몫이었다. 코치 역할은 외국계 홍보대행사인 에델만 직원들이 맡았다. 연설문 작성은 신 사장이 소속된 무선사업부가 담당했다.

◆커지는 프레젠테이션 스트레스

화려한 프레젠테이션은 B2B(기업 간 거래) 사업에도 도움이 된다. 건설업계는 지난해 말 400억달러 규모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건설사업을 한국 기업이 수주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로 프레젠테이션을 꼽는다. 화려한 동영상을 활용해 사업 내용을 설명,파워포인트 자료를 소개한 수준이었던 경쟁국과 확실한 차별화에 성공했다는 설명이다.

프레젠테이션이 CEO의 역량을 평가하는 잣대 중 하나로 자리잡으면서 국내 기업 CEO들이 느끼는 스트레스의 강도가 세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전시 행사에서 중요 프레젠테이션을 맡은 CEO들은 대부분 2~3일간 맹연습을 거듭한 뒤 무대에 선다"며 "그만큼 부담을 많이 느낀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확산되는 '스티브 잡스 효과'

업계에서는 미국 애플사를 이끄는 스티브 잡스를 'CEO 프레젠테이션 1인자'로 꼽는다. 업계 관계자는 "잡스가 나서는 프레젠테이션 동영상의 인터넷 클릭 수는 100만~300만에 달한다"며 "그가 무대에 한 번 설 때마다 애플 고객이 수백만명씩 늘어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영향력이 막강하다"고 말했다.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은 알기 쉽고 명확하다. 그는 기존의 제품을 '악당',애플의 신제품을 '영웅'으로 설정한 뒤 두 제품을 세밀하게 비교하는 전략을 즐겨 쓴다. 지난달 아이패드 설명회에서는 속도가 느리고 디스플레이 화질이 떨어지는 넷북을 비난한 뒤 아이패드가 넷북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압축적인 선전문구를 반복해 강조하는 것도 잡스만의 특징이다. 아이팟을 선전할 때는 '당신 주머니 속의 1000곡'이란 표현을 썼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