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글로벌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계열사별 사업조직을 전면 재편,헤드쿼터(HQ) 체제로 전환한다. 중국 미국 동남아 등 시장이 있는 곳에 현장 지휘본부를 배치,사업 실행의 주력 부대를 현지에서 진두지휘하기 위해서다. '국내 본사-해외 지사'의 전형적인 기업조직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경영 승부수다.
글로벌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선 각 계열사가 해외 현지에 사업거점의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것이 최태원 그룹 회장의 판단이다. SK는 오는 7월1일 해외사업을 총괄할 중국 통합법인(SK차이나) 출범에 맞춰 전 계열사 조직을 헤드쿼터 체제로 전환,글로벌 사업의 새 판을 짜기로 했다.
◆해외사업 세 축으로 운영
SK가 도입키로 한 헤드쿼터제는 △글로벌 헤드쿼터(Global HQ) △지역총괄 헤드쿼터(Regional HQ) △비즈니스 헤드쿼터(Business HQ) 세 축으로 구성된다.
GHQ는 해외사업 포트폴리오 조정 및 글로벌 정책을 수립하는 최상위 조직이다. 각 계열사들은 그룹 차원에서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중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사업의 핵심이 되는 지역에 GHQ를 설립한다. SK 차이나는 그룹 전체의 해외사업을 총괄하는 동시에 계열사들의 GHQ를 통합관리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게 된다.
지역총괄 개념의 RHQ는 특정 지역의 신규 사업 개발과 사업간 컨버전스(융합) 영역을 발굴하는 임무를 맡는다. GHQ 및 RHQ는 실무팀 위주로 장기출장이나 파견 형태로 가동해오던 해외지사 수준을 넘어 인사,재무 등 경영 전반에 대해 본사 승인 없이 독자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운영한다. 경영 자율권을 부여해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철저한 현지화를 통해 경쟁력 있는 신사업을 발굴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GHQ와 RHQ의 하위조직으로는 BHQ를 두고 구체적인 사업단위별로 글로벌 사업전략을 실행하도록 했다. 그룹 관계자는 "헤드쿼터 체제는 일부 다국적 기업들이 시도하고 있는 기능별 헤드쿼터제의 장점을 추려 재구성한 SK식 고유 조직체계"라고 설명했다.
◆주력 계열사 해외 전열정비 속도 낸다
SK 계열사들도 헤드쿼터 체제의 밑그림에 따라 조직과 인력을 재배치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가장 발빠르게 헤드쿼터 체제로 전환한 곳은 SK네트웍스.지난달 조직정비를 끝내고 중국과 인도네시아 두 곳에 RHQ를 신설했다. 중국 RHQ 밑으로는 △스피드메이트(자동차 경정비 · 중고차 매매 등 자동차 종합서비스) △소비재플랫폼(패션 · 와인 등) △트레이딩(철강 · 화학) △자원개발(철광석) BHQ를,인도네시아 RHQ에는 △플랜테이션(고무) △자원개발 BHQ를 각각 뒀다. 이 회사 관계자는 "중국 시장이 커질 경우 중국 RHQ를 GHQ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SK텔레콤도 핵심 사업부문 중 하나인 C&I(컨버전스 · 인터넷) CIC(회사 내 회사)를 최근 중국으로 옮겼다. SK에너지가 지난달 화학사업부문 CIC의 본사기능을 중국으로 옮긴 것도 헤드쿼터 체제 전략의 하나다.
◆글로벌 사업 재시동 위한 승부수
SK가 새로운 조직개념인 헤드쿼터 체제를 도입한 것은 '국내 사업만으론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91년 첫 진출 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중국 사업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승부수가 헤드쿼터 체제라는 게 그룹 안팎의 평가다. 최 회장은 최근 사내방송을 통해 "그룹의 두 축인 에너지와 정보통신 사업이 정체에 빠진 상황에서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생존의 해법을 국내에서만 찾지 말고 중국이나 미국으로 나가 성장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룹 관계자는 "중국 등 해외시장을 한국과 별개의 시장으로 생각한 시행착오가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더디게 만든 원인이 됐다"며 "헤드쿼터 체제 구축은 그룹 전체의 해외사업 시너지를 강화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정선/이정호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