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대법원장이 22일 우리 사회의 근간을 뒤흔든 일부 판사들의 튀는 판결에 대해 사법부 수장으로서 전례없이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나섰다.

이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1층 대강당에서 열린 신임법관 89명에 대한 임명식에서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상식에 비추어 받아들일 수 없는 기준을 법관의 양심이라고 포장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빨치산 추모제 전교조 교사 무죄''강기갑 국회폭력 무죄''광우병 PD수첩 무죄' 등 튀는 판결이 나온 이후 침묵을 지켜온 이 대법원장이 작심하고 공개 비판한 것이다.

이 대법원장은 먼저 "법관의 양심은 사회로부터 동떨어진 것이 돼선 곤란하며 그것은 개인의 독단적 소신을 미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장이 법관의 양심을 지적하면서 '사회로부터 동떨어진''개인의 독단' '미화' 등의 용어를 사용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그는 이어 "법관에게 판단의 기준을 제공하는 양심은 다른 법관과 공유할 수 있는 공정성과 합리성이 담보되는 것이어야 한다"며 "다른 법관들이 납득할 수 없는 유별난 법관 개인의 독단을 양심이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최근 선량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을 단독판사들이 법관의 양심 뒤에 숨어 내리는 것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대법원장은 또 최근 일부 판사들의 법정 내 '막말 사용'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법관은 재판을 주재하는 자이기 전에 하나의 인간으로서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며 "법정에서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언행을 해 재판주재자로서의 위엄을 잃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이 대법원장의 이날 발언은 PD수첩 무죄 판결 직후인 지난달 2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겠다"며 판결을 옹호하는 듯한 입장을 밝힌 것과는 대조적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후 40대 판사가 재판 당시 69세 노인에게 '버릇없다'고 한 '막말' 파문이 번지면서 여론이 악화되자 공식적으로 '진화'에 나선 모양새다.

대법원 공보 관계자는 "이 대법원장의 발언은 판사들이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한 원론적인 입장을 얘기한 것"이라면서도 "시기가 시기인 만큼 논란 판결에 대한 비판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날 이 대법원장의 발언내용이 전국 법원에 전해지자 법관들 사이에선 사법부 수장으로서 할 말을 했다는 의견과 법관의 양심을 사법부 수장이 너무 희화화했다는 비판적 시각이 나오기도 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