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열린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이용훈 대법원장이 한 발언이 법원 안팎에서 화제다. 이 대법원장은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상식에 비춰 받아들일 수 없는 기준을 법관의 양심이라고 포장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강기갑 무죄''PD수첩 무죄' 등 최근 잇따른 이른바 '튀는 판결'에 대한 강도높은 비판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대법원장이 PD수첩 무죄 판결 직후인 지난달 2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겠다"며 판결을 옹호하는 듯한 입장을 밝힌 것과는 대조적이다.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의 한마디 한마디는 무게감을 갖는다. 불과 한 달 사이 대법원장이 상황 판단을 180도 바꾼 듯한 발언을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예상보다 훨씬 차가워졌기 때문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PD수첩 판결 직후 40대 판사가 70세 소송 당사자에게 재판 중 "버릇없다"는 말을 할 정도로 구태에 젖은 법원문화가 드러났고,법원 내 사조직인 우리법연구회는 국민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존립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이 대법원장으로서도 사법부 옹호에 한계를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 대법원장이 그동안 강조해 온 '공판중심주의'도 포격을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고위급 검사는 "판사들이 공판중심주의를 멋대로 해석해 범인 처벌이 어렵다"고 말했다. 공판중심주의란 모든 증거를 법정 공판에서 쏟아내 진실을 가리자는 것인데,일부 판사들은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결과는 싸그리 무시한 채 법정에서 한 증언만을 채택한다는 지적이었다. 예컨대 조직폭력배가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돈을 안 낸 경우 술집 주인은 수사기관에서 '조폭들이 술값을 떼먹었다'고 진술하지만 법정에서는 맞닥뜨린 조폭들이 무서워 '공짜로 술을 줬다'고 말하는데,법원이 법정 증언만을 채택해 무죄가 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였다. 그래서일까. 이 대법원장이 재직한 지난 5년 동안 법원의 무죄 선고율은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이 대법원장의 '한 달 만의 변신(?)'에 국민들은 주목하고 있다. 우리법연구회 문제나 무죄 양산,'막말' 등 법원 구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이 대법원장의 법관 임명식에서의 발언은 '임기응변책'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임도원 사회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