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방살이의 설움은 컸다. 단독주택 문간방을 세 얻어 살던 시절,아이가 둘 이상이면 하나는 잠깐 맡기거나 골목 어귀에 세워두고 방을 구하러 가는 일도 흔했다. 자식 수를 속여 방을 얻고 나면 아이들이 떠들까 밤낮 노심초사하며 지냈다.

행여 주인집 아이와 싸우기라도 하면 잘잘못에 상관없이 제 자식을 야단치는 셋방 어미의 마음은 무너졌다. 오죽하면 배고픈 설움 다음이 집 없는 설움이라고 했을까. 이땅 중 · 장년층에게 내 집 장만이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됐던 건 그같은 아픔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같은 셋집이지만 아파트의 경우 주인집 식구를 만날 일도 눈치 볼 일도 없다. 대신 이번엔 아랫집에 신경을 써야 한다. 뛰는 소리는 물론 조금만 세게 걸어도 발자국 소리가 아래층에 들리는 층간소음 때문이다.

한창 뛰고 놀 아이에게 조심해서 걸으라고 주의를 줘야 한다. 내버려두면 아래윗집 간에 원수 되기 십상이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사건이 이어지면서 각종 보완책이 나왔다는데도 나아지기는커녕 낡은 곳보다 새 아파트가 더 심한 수도 적지 않다.

예전 아이들은 셋방살이 설움에 간혹 훌쩍이긴 했지만 방 안에서 발끝을 들고 걸을 일도,애써 소곤소곤 얘기할 일도 없었다. 뿐이랴.대문 밖만 나서면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면서 동네를 휘젓고,골목골목에서 딱지치기와 고무줄,무궁화 놀이를 하며 목청을 높일 수도 있었다.

그에 비하면 요즘 아이들은 가엾기 짝이 없다. 제집 셋집 가릴 것 없이 조용히 해야 하는데다 어려서부터 이 학원 저 학원을 오가야 하니 마음 놓고 떠들 시간도 장소도 없다. 이러다 큰소리로 말하는 법을 잊게 되진 않을까 싶을 정도다.

소음공해에 대해 유독 엄격한 독일에서 아이들의 '떠들 권리'를 허용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그간 교회 종,구급차 사이렌,제설차 소리만 빼곤 모두 소음으로 규정,유치원과 놀이터 소음에 대한 민원이 끊이지 않던 베를린에서 시(市)법을 개정,월~토요일 낮엔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를 소음에서 제외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일요일 낮은 예외로 했다고 한다. 이웃의 쉬는 권리를 인정한 셈이다. 아이들이 마음껏 떠들며 놀 수 있게 해주는 일은 중요하다. 문제는 때와 장소다. 어려서부터 목청을 높여도 되는 곳과 조용히 해야 하는 곳을 제대로 알려주고 가르칠 일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