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7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천문학자 조반니 스키아파렐리는 망원경으로 화성을 정밀 관측했다. 그는 열심히 화성을 쳐다만 본 것이 아니라 화성이 지구에 가까이 근접했을 때 망원경으로 살펴본 화성표면 지도를 그리기도 했다. 지도를 작성하던 도중 스키아파렐리는 화성 표면에 가느다란 직선들이 교차하는 것을 보고 이것을 ‘카날리(canali)’라고 불렀다.



이탈리아어 카날리는 영어의 ‘채널(channel)’에 해당하는 것으로 ‘수로’내지 ‘물길’을 뜻한다고 한다.카날리나 채널 모두 물이 지나는 길이라는 뜻을 담고 있을 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란 뜻은 담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스키아파렐리의 연구결과를 영어로 옮긴 번역자가 ‘카날리’를 생김세가 유사한 영어단어 ‘캐널(canal)’로 옮기면서 사단이 벌어졌다.번역자는 이탈리아어 canali(단수형은 canale)와 영어 canal이 유사하게 생긴만큼 뜻도 별차이가 없을 것으로 여긴듯 하지만,채널이 자연스럽게 조성된 물길인 반면 캐널은 운하처럼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든 물길이라는 큰 차이를 그만 간과해 버린 것이다.

이에 따라 영어권에선 스키아파렐리의 연구결과를 접한 뒤 자연스레 화성에 인공적으로 대운하를 팔 정도의 고등문명을 지닌 생명체,즉 외계인이 산다는 믿음이 급속도로 퍼져버렸다.

이같은 믿음이 널리 번지면서 19세기 후반 영국의 유명작가 H.G.웰스는 1898년 화성인이 지구를 공격한다는 줄거리를 담은 공상과학소설 『우주전쟁』을 발표하기까지 이른다.이 유명한 소설작품은 20세기초 미국서 라디오 드라마로 극화됐고,당시 대본을 읽던 라디오 아나운서가 실제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한 것인양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바람에 공포에 빠진 미국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최근 영국의 한 저명 과학자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외계인이 지구에서 인간을 주시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주요 포털 메인화면에선 사람들의 클릭질을 유도하는 외계인과 UFO 관련 기사를 몇일 단위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어쩌면 실제로 외계인이 주변에서 나를 살펴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유명 역사가 홉스봄은 '이상하게도 UFO의 절대다수가 50년대 이후 미국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관측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외계인에 대한 관념 상당부분이 백수십년전 한 번역자의 실수에서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씁쓸한 미소가 생기곤 한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이름이 중요한 법이고, 번역은 어려운 일인가 보다.


<참고한 책>
이희재, 번역의 탄생-한국어가 바로 서는 살아있는 번역강의, 교양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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