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이 보여주는 활약상은 참으로 감동적이고 드라마틱하다. 모태범 이상화 선수가 육상 100m에 비견되는 빙속 500m경기에서 사상 최초의 남녀 동반우승을 이끌어냈고 이승훈 선수는 아시아인 최초로 빙속 장거리 경기를 제패했다. 쇼트트랙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고 피겨의 김연아 선수 또한 분전 중이다. 훈련시설이나 각종 지원이 미비한 어려움을 딛고 이뤄낸 결실이어서 더욱 값지다.

세계 언론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특히 일본과 중국은 충격을 받은 모습이 완연하다. 마이니치신문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아시아의 맹주로 기술을 전수하는 입장이었던 일본이 역전을 당했다"는 글을 게재하면서 "쇼트트랙 보강을 위해 한국 코치를 초청하는 등 배우는 입장으로 전락했다"고 한탄했다. 한국을 따라잡고 아시아 맹주의 지위를 되찾기 위한 각오와 노력을 촉구한 글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한국을 연구하고 견제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스포츠만의 일이 아니다. 경제계에서도 최근 그런 양상이 두드러진다. 글로벌 금융 위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한국경제가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기업들 또한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을 내놓고 있는 까닭이다. 아직도 실적 악화에 시달리는 입장에서는 쉽게 납득하기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닛케이 비즈니스의 보도에 따르면 도요타 닛산 소니를 비롯한 일본기업들은 요즘 경쟁 한국기업 신제품을 입수해 분석하고,마케팅 전략 등을 연구하느라 여념이 없다고 한다. 세계적 입지를 굳힌 '코리아 4천왕(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들의 제품 품질과 디자인 · 판매기법 등을 벤치마킹하면서 '타도 한국'에 본격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주간 다이아몬드지의 경우는 '삼성에서 과장이 되려면 토익 920점을 획득해야 하는데 소니는 650점에 불과하다'며 인사규정을 비교하는 기사까지 싣기도 했다.

이 같은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은 한국 기업들이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리 기분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의 경영환경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음을 뜻하는 게 분명한 만큼 긴장감을 감추기 어렵다.

특히 제조업 전체적으로 보면 일본이 아직도 한국을 크게 앞서고 있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발군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반도체 산업의 경우만 해도 설비나 부품 등은 여전히 일본에 의존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또 지난 한 해 부품 · 소재 부문의 대일(對日) 무역적자는 200억달러를 상회했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한국기업 공략에 나서면 그 대응이 결코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우려가 한층 가중되는 것은 글로벌 경제 여건 또한 예전 같지 않은 까닭이다.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인 미국만 해도 향후 5년 이내 수출을 2배로 늘리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날로 확대되는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더 이상 다른 나라들에 시장을 내주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보호무역이 득세하고 특허 등을 둘러싼 지식재산권 분쟁이 가열될 게 불 보듯 뻔하다. 유럽 등 다른 나라들 역시 경제회복을 위해선 해외시장 확대가 절실한 형편이어서 부담이 더욱 크다.

그런 점에서 우리 기업들이 약간의 성취에 만족해 자만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금융위기 이후의 환율 효과가 실적 호전의 큰 배경이 된 게 부인하기 힘든 현실이고 보면 더욱 그러하다. 과감한 투자와 신시장개척,기술개발,신수종사업 발굴 등의 노력을 결코 게을리 해선 안 된다. 부품 및 소재의 자립도를 높이는 것 또한 시급한 과제임은 물론이다.

우리나라가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일본의 기술과 중국의 가격 경쟁력에 밀려 샌드위치 신세가 될 것이란 공포감에 시달려온 덕분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다시 위기의식을 갖고 긴장의 끈을 조여야 할 때다.

이봉구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