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천명관씨(46)의 두 번째 장편소설 《고령화 가족》은 '아무리 곱씹어도 지루하지 않고 몇 끼를 굶어도 좋을 만큼 짜릿한 이 콩가루 집안의 얘기'다. 소설 속 동네 어르신들 표현을 빌리자면 그렇다.

큰아들은 강간 등 전과 5범에 120㎏에 육박하는 거구다.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해 나름대로 '기대주'였던 둘째아들은 첫 영화를 시원하게 '말아먹고' 영화판과 아내에게 버림받은 알코올중독자가 됐다. 예쁘장한 막내딸은 '물장사'를 거쳐 이 남자 저 남자와 신나게 바람을 피우다 딸 하나 딸린 이혼녀가 됐다. 이렇게 한심한 자식들이 될 줄도 모르고 미역국을 드셨겠지 싶어 측은해지는 홀어머니,그런데 알고 보면 과거사가 만만치 않다.

《고령화 가족》은 '후줄근한 중년'이 되어 가난한 엄마에게 얹혀살 수밖에 없는 삼남매와 그들을 거두는 엄마의 이야기다. 보기만 해도 답답해지는 이 가족의 평균 나이는 49세,숫자로 들으면 더 막막해진다. 심지어 사지육신 멀쩡한 아들들은 무위도식을 일삼고,딸의 사생활은 여전히 방탕하니 대책도 서지 않는다.

소설의 화자인 둘째아들마저도 "마이너리그 중의 마이너리그,인생의 패배자들만 모아놓은 우리 가족"이라고 한탄할 지경이다.

그런데 이 골치 아프고 뻔뻔한 '캥거루족' 자식들의 천태만상과 한때 외간 남자와 눈맞아 야반도주를 감행했던 '화려한 과거의 소유자' 엄마를 다루는 작가의 솜씨는 능란하고 유쾌하다. 조카가 주문한 피자에 눈독을 들이며 생떼를 쓰고,동네 미용사 여자를 한번 어떻게 해보겠다고 온갖 꾀를 짜내는 형제의 모습은 애처로우면서도 재미있다. 만화캐릭터가 앙증맞게 그려진 주니어용 팬티를 훔쳐내 욕구를 해소하려다 망신당하는 큰아들의 모습도 곱씹을수록 웃긴다.

'콩가루 가족'이 처한 심각한 상황을 스포츠 생중계라도 하듯 신나게 떠벌리던 소설은 이들이 숨겨왔던 '썩 괜찮은 면모'가 드러나면서 사소하게 반전한다. 가출한 조카를 찾기 위해 제 나름의 희생을 감수하려 드는 큰아들,조심스럽게 신뢰를 쌓아갈 여자를 찾아낸 둘째아들,버젓한 가정을 꾸리고 새 삶의 방식을 발견한 막내딸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인생의 패배자인 자식들에게 온갖 진수성찬을 해다 바치며 보살처럼 보듬었던 엄마 또한 옛 사랑과 행복을 쌓아가려 한다. 작가는 "사실 멋있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멋있는 순간과 멋있는 행동이 따로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처가 있고 오류도 있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구질구질하게 살았지만 소시민적인 행복을 찾아내는 모습도 그렸고요. 집이라는 게,한국적인 가족주의라는 게 그런 것 같아요. 소설에서 '생각할 때마다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힘이 쭉 빠지게 만드는,평생 달고 사는 오래된 지병 같은 거'로 가족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대붕처럼 구만리 장천을 날아도 결국은 집에 발을 디디고 있는 거잖아요. 긴 시간에 다양한 무대를 오간 전작 《고래》에 비해 《고령화 가족》은 현실적이고 가까운,소품 같은 작품으로 부담없이 쓰고 싶었습니다. "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