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목을 가눌 수 없는 갓난아기와도 같았다. 평온히 엎드려 자는 듯 보이지만 언제나 돌연사의 위험을 안고 있는 갓난아기였다. 제멋대로 두었다가는 목이 꺾이거나 침대에서 굴러 부상을 입거나 얼굴을 침구에 박고 숨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니 계속 돌보지 않을 수 없었다. '

《아오이가든》 《사육장 쪽으로》 등 소설집에서 잔혹하고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펼쳐온 소설가 편혜영씨(38)는 첫 장편소설 《재와 빨강》(창비)에서도 주인공에게 안락과 평화를 허락하지 않는다. 소설의 주인공인 '그'는 제약회사 약품개발원으로 근무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비행기로 5시간 거리인 C국에서 파견근무하라는 지시가 내려온다. '기약없는 소액적금을 붓는 것처럼 평범하기 짝이 없던 그의 인생에서 수령이 보장된 고액보험증권'같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평온한 갓난아기같았던 그의 삶은 돌연사할 위기에 처한다. 기회의 땅 같았던 C국에는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었다. 그에게 지시를 내릴 C국의 '몰'이라는 인물과는 연락이 끊긴다. 휴대전화가 든 트렁크를 잃어버려 본국 사람들과는 연락을 취할 수 없다. 심지어 전처가 처참하게 살해당했고 유력 용의자로 자신이 지목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그는 공포에 짓눌리기 시작한다. 도주한 그는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쓰레기를 뒤지는 부랑자 생활을 거쳐 쥐를 잡는 방역원이 된다. 그렇지만 아직도 '몰'을 비롯해 그를 알 만한 사람들과는 모조리 연락이 닿지않는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고단한 생활을 하게 된다.

소설에는 편안함이라고는 단 한 방울도 스며들어올 틈이 없다. 편씨는 단단한 문장을 건축자재로 삼아 고통스럽고 불가해한 상황을 집요하게 쌓아올렸다. 편씨는 소설에 대해 "주인공의 생존기이자 몰락기"라고 설명했다. 제목도 몰락을 뜻하는 재와 삶을 의미하는 불꽃이 공존하는 느낌으로 붙였다.

알 수 없는 전염병과 더러운 환경은 전자를,끊임없이 등장하는 쥐의 왕성한 번식력은 후자를 상징하는 장치다.

편씨는 또 "주인공은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에 현실에서 도망치지만,그를 기다렸던 건 생존이 어려운 쓰레기장과 하수구였다"면서 "생존본능과 욕망이 오히려 삶을 점점 망쳐가는 역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