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는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해왔고 마침내 자신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었다. 이변도 없었다. '당대 피겨 여왕은 올림픽 금메달과 인연이 없다'는 동계올림픽 징크스를 깼다. 최대 변수였던 심리적인 부담은 물론 '동갑내기 라이벌' 아사다 마오(일본)와의 신경전 등을 깔끔히 씻어낸 최고의 무대였다. 한마디로 '퍼펙트'였다.

김연아가 26일 얻은 150.06점은 자신이 세운 역대 최고점(133.95점)을 무려 16.11점이나 뛰어넘는 신기록이다. 총점(228.50점)도 역대 여자 싱글 최고점(210.03점)을 넘어선 기록이다. '일본 피겨의 희망'아사다 마오가 이번 올림픽에서 자신의 역대 최고점(205.50점)을 세웠지만 김연아에겐 23점이나 모자랐다. 이로써 김연아는 4대 메이저대회(올림픽 · 세계선수권 · 그랑프리 파이널 · 4대륙선수권)를 모두 제패,'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첫 번째 주인공이 됐다.

파란색 하이넥 드레스를 입고 '피아노 협주곡 F장조'(조지 거슈윈 작곡)에 맞춰 연기를 시작한 김연아는 프리스케이팅 연기 초반에 주특기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피겨 여제 대관식'을 예고했다.


김연아는 웬만한 여자 선수들에게 불가능에 가까운 이 콤비네이션 점프를 너무도 쉽게 해낸다. 높은 점프력과 힘찬 회전,안전한 착지는 '교과서 점프'라는 명성에 딱 맞아떨어진다. 마지막 더블 악셀까지 총 7번의 점프를 모두 실수 없이 성공시켜 가산점만 무려 17.4점을 받았다. 필살기 '트리플 악셀'을 내세운 아사다 마오의 가산점은 8.82점밖에 되지 않았다. 기본 점수에선 아사다 마오(60.4점)가 김연아(59.5점)보다 더 높았지만 가산점에서 승부가 갈린 것.

표현력 간극은 더 더욱 컸다. 예술 점수의 다섯 가지 요소(안무 · 연결 · 해석 · 연기 · 기술) 중 연결(8.6점)과 안무(8.95점)를 제외하고 모두 9점을 넘겨 역대 최고점(71.76점)을 얻었다. 예술 평가 요소 중 9점대를 넘긴 선수는 이번 대회에 김연아가 처음이다. 예술점수의 가중치가 쇼트프로그램에서는 0.8이지만 연기력을 중시하는 프리스케이팅에서는 1.6으로 두 배여서 프리스케이팅 점수 차이가 더 벌어졌다.

김연아의 프로그램 구성은 전문가들이 보기에도 확실히 어렵다고 한다. 그럼에도 연기가 물 흐르듯 정교해 가산점이 많이 붙는다. 김연아는 기술에 예술을 접목,'은반 위의 발레'를 가장 잘 실현하는 피겨 선수다. 다른 선수와 달리 관능미와 예술성이 한꺼번에 느껴지는 것도 김연아의 풍부한 표현력 덕분이다.

역시 김연아는 강심장이었다. 큰 대회일수록 더 냉정했다. 가장 중요한 대회에서 가장 큰 압박감과 이변을 최고의 실력과 강인한 정신력으로 이겨냈다. 상상을 초월하는 압박감을 고스란히 '연기하는 즐거움'으로 승화시켰다.

라이벌 아사다와 수년간의 대결도 마침표를 찍었다. 주니어 시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실력 향상을 견인해 온 두 친구의 선의의 대결에서 김연아가 가장 높은 단상에 올랐다.

김진수/김주완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