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와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엇갈린 행보를 하고 있습니다. 이 총재는 지난 17일 "(금리인상 시기가)그리 머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금리인상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했습니다. 반면 꼭 한 주 뒤인 24일 버냉키 의장은 "앞으로 상당 기간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며 정반대의 얘기를 했습니다.

한국과 미국이 딴 길을 걷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직접적인 원인은 글로벌 금융위기입니다. 미국은 위기의 진원지이고 한국은 상당히 멀리 떨어진 변방입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0년 전후 발생한 '닷컴 버블'이 꺼지는 과정에서 한 · 미 양국이 확연히 다른 정책을 선택한 데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 미국은 경기침체를 감내한 반면 한국은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과감한 경기부양책을 썼습니다. 가전제품과 보석류 등에 부과하는 특별소비세를 폐지했고 승용차 특소세 한시인하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여기에다 신용카드 사용한도와 현금서비스를 대폭 늘리고 길거리 마케팅을 허용했습니다.

그 결과 가계소비 버블이 만들어졌고 2002년 국내 경기가 매우 좋았으나 그 이후 극심한 소비불황의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미국은 닷컴 버블이 꺼진 뒤 경기가 다시 좋아져 금리인상을 단행했으나 우리는 그 시기를 늦춰야 했고,2007년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져 미국이 금리를 내릴 때 우리는 올려야 하는 부담이 생겼던 것입니다.

경기상황만을 놓고 본다면 한국에선 금리인상 타이밍이 가까워졌습니다. 생산과 소비가 모두 좋아졌고 물가는 들썩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미국이 상당 기간 초저금리를 유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금리를 올릴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금리가 오르면 아무래도 원화가 강세(환율 하락)로 갈 가능성이 크고,국내 수출기업들의 가격경쟁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한국의 자본시장은 외국인 비중이 상당히 높아 환율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한국은행이 '나홀로 금리인상'을 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큰 상황입니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