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뮌스터의 바스프(BASF) 컬러 디자인 스튜디오.형형색색으로 코팅된 지름 50㎝ 크기의 원형 철판 모형들이 가득 진열돼 있다. 이 중에서도 눈길을 사로잡는 건 '물 같은 금속'이라는 뜻의 '리퀴드 메탈(liquid metal)' 기법을 사용한 전시품.빛의 차이와 보는 각도에 따라 명암을 극대화하는 이 코팅 기법은 기존 자동차 표면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바스프가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이 기술은 2일 제네바 모터쇼에 출품할 현대자동차의 컨셉트카 '아이플로우(i-flow)'에 처음 선보일 예정이다.

◆현대차와 컨셉트카 공동 개발

아이플로우에 적용되는 바스프의 코팅 기술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26일 기자 간담회를 연 바스프는 기존의 4겹 코팅 기술을 개선,중간층(primer)을 하나 없앤 3겹 코팅 기술을 공개했다.

후안 게버 코팅 솔루션 담당그룹 부사장은 "코팅 공정이 줄어들어 비용 절감은 물론 자동차 제조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와 휘발성 유기화합물(VOC)을 15~20% 감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플로우는 자동차 경량화 및 친환경성을 내세운 현대차와 바스프의 합작품이다. 바스프와 현대차는 총 400만~500만유로의 개발비를 공동 투자했다. 바스프는 코팅 기술과 함께 폴리우레탄,폴리프로필렌,폴리아미드 등 각종 엔지니어 플라스틱 부품 개발을 맡았다. 컨셉트카의 차체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 내장재뿐 아니라 일부 외장재도 철판이 아닌 엔지니어 플라스틱 제품으로 대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화학 회사,자동차 시장 눈독

바스프가 현대차와 컨셉트카 공동 개발에 나선 것은 유럽과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장 점유율이 낮은 아시아 지역 공략을 가속화하기 위해서다.

이만우 한국바스프 스페셜티 사업부문장은 "아시아 자동차 메이커 중에서도 현대차의 성장 잠재력이 높다고 판단해 컨셉트카 개발 파트너로 참여했다"고 밝혔다.

바스프는 글로벌 화학 회사 중 자동차 코팅 및 폴리우레탄 부품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폴리우레탄 제품의 경우 전체 사업 포트폴리오 중 가장 많은 23.8%가 자동차 부품이다. 독일 바이엘,미국 GM플라스틱과 다우케미컬 등이 경쟁 상대다.

독일 서부 렘포드의 폴리우레탄 공장은 바스프의 자동차 부품 기술을 집약한 곳이다. 차종에 따라 천차만별인 부품의 규격,재질 등의 기준을 이곳에서 정해 전 세계 바스프 공장에 전파한다.

토마스 부어라거 기술 매니저는 "여기서 생산하는 폴리우레탄 부품의 종류만 해도 1억개에 달한다"며 "충격 흡수 효과가 경쟁사보다 2~3배 이상 뛰어난 셀라스토(바퀴의 충격 완화용 부품)의 경우 전 세계 자동차 메이커의 90%를 점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용 플라스틱 비중 높아질 듯

자동차 부품산업에서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이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녹이 슬지 않고 부품 교체가 쉬울 뿐 아니라,경량화에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회사들도 연비 절감 등 친환경성을 높이기 위해 엔지니어 플라스틱 제품을 선호하고 있다. 소비재보다 부가가치가 높다는 점도 화학사들이 자동차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다.

국내 화학 회사들도 자동차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토탈은 기존 자동차 경량 소재로 주로 쓰이는 복합PP(프로필렌)보다 20% 가벼운 나노복합PP 개발에 성공,YF쏘나타 등 현대차의 신차에 적용하고 있다.

한화석유화학은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탄소나노튜브를 통해 자동차 경량화 부품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화학 업체의 꿈은 플라스틱 제품의 안정성과 내구성을 강화해 철강을 완전히 뛰어넘는 것"이라고 말했다.

뮌스터 · 렘포드(독일)=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