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주요 경영 계획을 결정하는 이사회 규모를 줄이고 있다. 포스코가 최근 정기 주주총회에서 15명이던 이사회 정원 한도를 13명으로 감축한 데 이어 삼성전자도 이사 수를 9명에서 7명으로 줄이기로 했다. LG그룹 주력 계열사들도 정기 주총을 통해 이사회 정원을 최소 2명 이상 줄인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사회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10여년 전의 외환위기 직후와는 달리 기업의 투명성이 크게 향상됐다"며 "빠른 의사 결정과 책임 경영을 위해서는 다수의 사외이사와 사내이사로 구성된 이사회를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대기업들 잇달아 '이사회 다이어트'

포스코는 지난달 26일 주총에서 '6인의 상임이사와 9인의 사외이사'로 규정돼 있던 정관을 변경,이사회 정원 한도를 '5명의 사내이사와 8인의 사외이사'로 줄였다. 1997년 국내 대기업 중 처음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하면서 사내이사 9명,사외이사 10명 등 19명을 임명했던 이사회 정원을 매년 축소 조정,30% 이상 감축한 것이다. LG화학 · 디스플레이 · 상사 등 LG 주요 계열사들은 이달 중 열릴 주주총회에서 현재 9인 이하로 돼 있는 이사회 정원을 7인 이하로 줄이기로 했다.

이사 정원은 손대지 않았지만 실제 등기 임원을 줄이는 기업도 늘어나는 추세다. 삼성전자는 임기 만료된 등기이사를 새로 선임하지 않는 방식으로 올해 이사 수를 기존 9명에서 7명으로 줄이기로 했다. 1999년 22명이었던 삼성전자 등기이사는 2003년 14명으로 준 데 이어 7년 만에 절반으로 감소하게 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0명이 이사회를 하면 신중한 결정은 이뤄지겠지만 요즘처럼 빨리 변화하는 시기에 효율적인 결정은 내리기 힘들다"고 등기이사 축소 배경을 설명했다.

KT&G도 12명에서 10명으로 이사회 규모를 줄였다. KT&G는 이사회 멤버 10명 중 사장을 제외한 전원을 사외이사로 선임하고 있다.

◆"비대해진 사외이사 축소가 목적"

대기업이 이사회 슬림화에 나선 데 대해 이동현 가톨릭대 교수는 "올해 이사회 규모 축소는 그동안 진행한 구조조정 차원의 축소와는 달리 급변하는 산업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황인학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외환위기 이후 사외이사 제도가 도입되고 소액주주운동이 일어나면서 자신감이 없던 기업들은 사외이사를 늘리는 방법으로 대응해 왔다"며 "하지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지배구조 문제와 경영 능력에 자신감이 붙은 기업들이 이사회도 신속성,효율성 등 경쟁력을 중심으로 재편하는 초기 단계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기업들의 투명성이 계속 높아진 데다 최근 2년간의 세계적인 금융위기 속에 국내 기업들이 선전함에 따라 오히려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가 바람직하다는 의견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사외이사 제도가 보편화하면서 인재풀이 빈곤해진 것도 이사회 축소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모그룹 관계자는 "사외이사 만기가 끝났지만 마땅한 인물을 찾지 못해 적정한 비율로 사내이사를 줄인 계열사도 있다"고 전했다.

김용준/장창민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