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남경읍(52) · 경주(46) 형제가 형과 동생 역으로 연극 '레인맨' 무대에 올랐다.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 이 연극에서 경읍씨는 동생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폐증 환자 레이먼을,경주씨는 레이먼의 순수함에 감화되는 동생 찰리 역을 맡았다.

캐스팅부터 화제였다. 두 사람이 형제 역으로 무대에 선 건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이후 15년여 만이다. 연극과 뮤지컬을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해온 형제지만 연극에서 호흡을 맞추는 건 처음이다. 게다가 '레인맨'은 형제간 우애와 가족애를 다루는 연극이라 실제 형제가 이를 어떻게 표현할지에 관심이 쏠렸다. 찰리역을 먼저 제안받은 동생 경주씨가 형에게 레이먼 역을 맡아 달라고 직접 요청해 성사됐다. 지난달 26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두 배우는 연극의 형제관계와 실제 형제관계의 연결고리를 풀어놓았다.

"나이 차이가 있어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 같은 형님이었어요. 제가 뮤지컬을 하는 데에도 형님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죠.형님 때문에 뮤지컬 음악도 듣게 되었고,일에서도 형님이 먼저 갔던 길을 제가 따라가게 됐어요. 또 레이먼과 찰리의 관계와 우리 사이에는 비슷한 점이 있어요. 극중에서 어린 시절 레이먼이 찰리를 보살폈듯,형님도 제게 그렇게 해줬습니다. 형님이 저를 업고 다녀서 동네 사람들이 '아기가 아기를 업는다'고 말하기도 했고요. "(남경주)

"어릴 때에는 제가 동생의 성적표 관리도 하고 매도 드는 무서운 형이었죠.경주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된 후에는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았어요. 같은 업계에 있는 사람으로 동생을 보면 깊이 있는 인생을 살며 깊이 있는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가 된 듯합니다. 그리고 바라는 게 있다면?당연히 형을 잘 모셔야지.하하."(남경읍)

혈육의 정은 연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경읍씨는 "동생과 호흡을 맞출 때 뭔가 편안해지고,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경주씨는 "극중 형제의 이별을 연기할 때 확실히 눈물도 빨리 나고 몰입도 금방 되더라"고 했다.

연극 '레인맨'에서 관객의 찬사가 터져나오는 장면은 암기에 천재적인 능력을 지닌 레이먼이 원주율과 전화번호부,성서,축구의 역사,세계의 인구 등을 완벽하게 외워 줄줄 읊는 부분과 찰리 · 레이먼 형제가 축구를 하며 마음을 여는 부분이다. 레이먼 역을 맡은 경읍씨는 원주율은 소수점 아래 100자리까지 외웠다. 잊어버리면 애드립으로도 임시처방이 불가능해 극이 끝나는 그날까지 반복하고 또 반복해야 한다. 경읍씨는 "레이먼이 틀린 정보를 외우거나 머뭇거리면 천재로 안 보일 것"이라면서 "대신 다른 대사는 좀 실수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안전장치가 생기더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찰리와 레이먼이 공을 주거니받거니 하며 정해진 횟수를 채우는 장면에서 성공할 때는 박수가,실패할 때는 안타까운 비명이 터진다. 이에 대해 경주씨는 "내가 축구는 잘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레인맨'은 이기적인 인터넷 주식 트레이더 찰리와 자폐증환자 형 레이먼의 이야기다. 레이먼 역에는 남경읍씨와 박상원씨,찰리에는 남경주씨와 원기준씨가 더블캐스팅됐다. 28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3만3000~8만8000원.(02)548-1141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