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이었던 지난달 28일 중국 베이징의 밤은 장관이었다. 오후 늦게부터 내린 눈으로 밤은 하얗게 변했는데 하늘은 불꽃천지였다. 중국에선 대보름날도 섣달 그믐날처럼 폭죽을 터뜨리며 신년의 행운을 기원하는 게 관습이다. 새벽까지 이어진 대보름 폭죽으로 깊은 잠은 포기해야 했다.

길어야 20초 정도면 공중에 흩어져 버리는 폭죽 한 통의 값은 비싼 게 3000위안(약 51만원) 정도다. 설날부터 대보름까지의 춘제기간 중 한 가정에서 1만위안(170만원)어치의 폭죽을 터뜨리는 건 흔한 일이다.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작년엔 신축 중인 관영 CCTV 방송국 건물이 불탔고,올해는 허베이성의 고성이 화재로 전소됐다. 광둥성에선 20명의 일가족이 몰살당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폭죽은 여전히 중국 설날의 대표적 문화다. 과거 몇 차례 폭죽을 금지한 적이 있지만 그때마다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 실패했다. 올 섣달 그믐날 베이징에서 수거한 폭죽 쓰레기만 80만t이 넘는다고 한다. 작년보다 11만t 이상 늘었다.

중국인들은 왜 폭죽에 그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나쁜 귀신을 쫓아낸다는 본래의 의미만으론 설명하긴 어려워 보인다. 베이징에 사는 텅씨는 "서민들이 집단적 축제를 즐기는 동시에 스트레스를 푸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소외계층 사람들이 중국이란 단어 앞에 동질성을 느끼고,동시에 억압된 감정을 잠시나마 털어낸다는 뜻일 게다.

대보름날의 폭죽을 보면서 며칠 앞으로 다가온 양회(兩會)가 생각났다. 양회는 오는 3일 열리는 전국정치협상회의(정협)와 5일 개막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일컫는 말이다. 전국의 정협위원들과 전인대 대표들이 베이징에 모두 모여 국사를 논하는 양회는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연례 정치행사다.

그러나 해마다 열리는 양회를 보면서 과연 이것이 국가의 중요정책을 결정하는 것인지,아니면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과시용 행사인지 헷갈리는 것도 사실이다. 정치자문위원이라 할 수 있는 정협위원들은 사회 각 분야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쏟아내지만 그것이 실제 정책으로 채택되는 예는 극히 드물다. 국회의원격인 전인대 대표들 사이에서도 정치개혁 등 민감한 부분에 대한 토론은 이뤄지지 않는다.

오히려 양회가 열리는 인민대회당이 아니라 베이징 도심의 대형 호텔들이 더 뜨겁다. 전국의 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것은 더 할 나위 없는 로비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양회 기간을 전후해서 베이징의 도심에서 호텔방을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지금 중국은 엄청난 빈부 격차,소수민족 간의 갈등 가운데에 있다. 또 혁명 세대와 개혁 · 개방 세대,그리고 국제화된 세대 간의 차이가 엄존한다. 그 속에서 수많은 문제가 분출되고 있다. 폭죽을 터뜨리고 대규모 정치행사를 한다고 해서 심화되고 있는 갈등이 해결되진 않는다.

인터넷으로 전 세계가 소통하는 지금 시대에 장막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인식과 통치술을 고수하고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중국 정부가 이번 양회를 통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