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무수히 많다. 지구촌 200여 나라 가운데 풍요로운 몇 나라만 제외한 80% 이상이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지난 1월16일 발생한 아이티 지진은 우리나라의 따뜻한 봉사정신을 확인하고 나 자신에 대한 '젊음'을 절실히 간구하는 계기가 됐다. '내가 저 현장에서 직접 의료봉사를 할 수 있었으면….20년만 더 젊었어도…'라는 생각을 하면서 30여년 전을 돌이켜 보았다.

1970년대 세종병원을 개원하기 전에는 한국의 의료시설이 지금처럼 풍요롭지 않았다. 매년 심장병 어린이들이 8000명씩 태어나지만 수술할 수 있는 곳은 대학병원 한두 곳에 불과하다 보니 수술 가능한 숫자가 300명에도 못 미쳤다. 이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미국 독일 등으로 수술을 하러 떠났다. 흉부외과 의사로서 자존심이 상했다. 우리가 심장수술을 할 수 있는 전문병원을 만들어 한국 아이는 물론 해외 아이들까지도 수술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개원 8년째였던 1989년의 일이다. 중국의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를 데려와 무료 수술한 기억은 아직도 내 가슴에 크게 자리잡고 있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한국의 의술로 적체된 심장병 어린이들을 수술할 수 있었고,게다가 해외 심장병 어린이까지 데려와 무료 수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게으르지 않게 이들을 도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신기한 것은,마음을 먹으면 환경이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심장병 무료 수술 캠페인을 시작하니 복지재단이나 독지가들로부터 돕고 싶다는 연락이 답지했다. 봉사가 전염된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는 순간이었다. 기대하지도 않은 도움을 받으니 처음엔 한 해 10여명 하던 무료 심장 수술을 지금은 100명 이상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모두 850명에 달하는 해외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었다.

2009년에는 프로야구 SK구단과 세종병원이 손잡고 홈런존에 들어간 홈런 수만큼 무료 수술을 시행했다. 이 소문은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 나가면서 신기한 일들이 이어졌다. 익명의 동전박스가 우편으로 배달오고,아들과 3년 동안 모은 저금통을 기부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사진 동호회에서는 심장병 어린이들을 위한 사진전을 열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아이티에 지진이 발생하면서 많은 의사들과 의료 기자들,간호사 등이 재난 현장을 찾아가 봉사하는 모습을 뉴스를 통해 보았다. 이를 본 한 직원이 우리 병원이 갈 수 없다면 직원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으자는 의견을 제안했다. 이 얘기를 듣고 '20년만 젊었으면…'이라고 생각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생각이 있다면 어떻게든 도울 수 있는 거였는데 말이다. 사랑과 봉사정신은 어떤 바이러스보다 더욱 힘있고 전염력이 크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박영관 세종병원 회장 sjhpy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