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기업으로부터 연구를 위탁받아 수행하는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한 의사들을 형사처벌토록 한 판결이 처음으로 나왔습니다.대부분 언론에서는 이를 크게 다루지는 않았는데,내용을 살펴보면 의미가 큰 판결입니다.상급심에서 확정될 경우 제약·의료업계에 만연해 있는 연구,학술지원 등을 통한 ‘변종 리베이트’에 철퇴가 가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또 이번 판결에서는 어떤 경우에 리베이트가 아닌 정상적인 연구지원인지에 대해 처음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조한창)는 지난달 제약사로부터 의약품 부작용 연구 등 명목으로 금품 및 향응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기소된 아주대병원 영상의학과 과장 김모씨에 대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강북삼성병원 영상의학과 과장 정모씨에 대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습니다.또 이들에게 금품 등을 제공한 혐의(배임증재,뇌물공여)로 의약품 수입판매업체인 G사 전 사장 박모씨와 D사 전 사장 이모씨에 대해서는 징역2년에 집행유예 3년,A사 전 대표 손모씨에 대해서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반성을 하기 보다는 관행 등이라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제약회사와 납품관계에 있는 병원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리베이트의 근절이 필요한 점 등에 비춰 죄질이 불량하다”고 밝혔습니다.재판부는 그러나 I대 영상의학과 과장 김모씨와 그에게 금품을 건넨 혐의를 받은 또다른 G사 전 대표 김모씨에 대해서는 “리베이트 목적이 아닌 적법한 연구가 수행됐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경찰은 앞서 2008년2월 컴퓨터 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시 환자에 주입해 영상의 질을 높이는 전문의약품인 조영제(造影劑)의 ‘시판 후 조사’(PMS) 명목으로 금품을 주고받은 제약업체 관계자 6명과 의사 355명을 적발해 이 가운데 액수가 큰 의사 3명과 제약사 관계자 3명을 기소했습니다.기소되지 않은 다른 의사들은 의사면허정지처분을 받았습니다.PMS는 의약품이 출시된 후 실제 사용되면서 발생한 부작용 사례를 수집해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보고하기 위한 조사이나 조영제는 PMS 의무 대상이 아니었습니다.그런데도 업체들이 PMS 명목으로 병원과 의사측에 돈을 건네자 경찰이 의심을 품고 수사에 나선 것이지요.

경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이번에 유죄판결을 받은 업체들은 연구목적에 ‘유대강화 및 경쟁사 침투방지를 위함’이라고 명시했으며 연구도 실제 부작용 사례를 수집했는지 불분명하고 보고서가 상부에 보고되지도 않았습니다.더욱이 이 과정에서 상품권과 선물 지급,골프접대,회식비 지원 등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의사 김씨가 개인적으로 수수한 금품 및 향응은 총 3000만원,정씨는 1500만원이었습니다.

재판부는 그러나 무죄판결한 G사에 대해서는 △연구목적이 구체적으로 특정 △연구의 성과를 내고자 노력 △조사대상 병원을 납품과 무관하게 공정하게 선정 △연구결과를 식약청과 본사에 보고하는 등 연구가 적법하게 수행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2008년 의사면허정지처분을 받은 300여명의 의사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여서 G사에 대한 연구수행이 무죄로 확정되면 해당 의사들은 정지처분이 취소될 전망입니다.

G사를 대리한 법무법인 광장의 고원석 변호사는 “제약업계의 자발적인 의약품 부작용 연구가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세계적으로 전례없는 사건이었다”며 “이번 판결로 적법한 연구수행의 기준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제약업계가 리베이트 문제로 몸살을 겪고 있는 요즘 이번 판결이 제약업계 비리를 근절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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