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 신진금고 영업팀 과장의 학창시절 꿈은 '스포츠 에이전트'였다. 연세대 체육학과를 거쳐 영국 메트로폴리탄대학에서 스포츠경영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것도 이런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실제 그는 대학원 졸업 직후 FIFA(국제축구연맹)가 공인하는 선수 에이전트 자격증을 땄고,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명문구단인 '아스널'에서 인턴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랬던 이 과장이 꿈을 접게 된 것은 2007년 9월 서울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때문이었다. "가업을 이어달라"는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을 마다할 수 없었던 것.한동안 고민하던 이 과장은 10여년 전 우연히 읽은 부친의 옛 일기장이 기억났다.

"아버님 일기 중에서 1차 오일쇼크 직후 사채업자들에게 돈 빌리러 다니는 대목이 있었죠.'생산부 김씨가 얼마 전 득남했는데 이번 달 월급도 제때 주기는 어렵고….어디서 돈이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문득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이렇게 고생하면서 키워온 가업을 잇지 않는 것은 큰 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가업을 계승하기로 결심한 이 과장은 아스널 인턴 생활을 접고 신진금고에 입사했다. 첫 부서는 국내 영업 파트.영업을 하려면 제품의 특성을 속속들이 파악해야 하는 만큼 금고와 친해질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란 이유에서였다. 입사한 지 1년 뒤 해외 영업 파트로 자리를 옮겼다. 금융위기 여파로 내수 시장이 위축된 만큼 베트남 인도네시아 러시아 등을 뚫으라는 특명이 함께 떨어졌다.

이 과장은 "입사할 때만 해도 회사 직원 대부분이 '내수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산다'고 생각했던 탓에 일부러 해외 바이어를 찾아다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며 "해외에서도 인정하는 기술력 덕분에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선 지 얼마 안 됐는데도 벌써부터 상당한 성과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입사한 지 2년6개월이 지난 지금 이 과장의 머리 속은 온통 금고 생각뿐이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을지,해외 시장을 더 뚫으려면 어떤 전략을 쓰는 게 좋을지를 고민하느라 스포츠 에이전트에 대한 미련은 벗어던진 지 오래다.

"할아버지가 신진금고를 창업했다면 아버지는 국내 시장을 개척했습니다. 제가 할 일은 이제 세계 시장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동남아시아와 중동 러시아에 이어 금고 선진국인 유럽과 일본 미국도 신진금고의 영토로 만들어야죠.한 10년 정도 이를 악물고 싸우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