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 파이팅(Breath fighting)'은 삶과 죽음이 인공호흡기 안에서 벌이는 격렬한 투쟁이다. 인공호흡기가 숨을 불어넣는데 환자도 숨을 뱉어낸다. 호흡기는 숨을 빨아들이는데 사람도 숨을 들이마신다. 호흡기와 입술 사이에서 들숨과 날숨이 엇박자를 내야 산다. 브레스 파이팅 상태처럼 들숨과 들숨,날숨과 날숨이 동시에 일어나면 생명은 위태롭다. 삶의 위험 표시등이 깜빡인다.
그러나 환자가 의식불명 상태에서도 자발적으로 호흡한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소생의 신호이기도 하다. 세상이 잔인하게 휘두른 칼날에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더라도 살아남겠다는 고귀한 의지다.
4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소설가 한강씨(40 · 사진)는 네 번째 장편소설 《바람이 분다,가라》(문학과지성사)를 두고 "들숨과 날숨이 격렬하게 부딪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제목 또한 "생에 거센 바람이 불어 기울어지고 뿌리가 뽑힐 지경이 되어도 어떻게든 나아가라,엉금엉금 기어서라도"란 뜻에서 붙였다고 말했다.
소설은 브레스 파이팅을 경험한 두 여자의 강렬한 생존투쟁을 처절하게 벼린 문체로 보여준다. 화가 서인주가 미시령 고개에서 일어난 의문의 자동차 사고로 갑작스럽게 죽는다. 다들 자살이라고 생각한다. 인주를 여자로,화가로 흠모했던 미술평론가 강석원은 평전을 써서 인주가 '비극적으로 요절한 미모의 천재'란 식으로 포장하려 한다. 하지만 인주의 오랜 친구였던 이정희의 생각은 달랐다. 삶에 대한 열정으로 충만했던 벗이 자살을 택할 리가 없다는 확신이 든 정희는 악착같이 사실을 파헤친다.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정희 또한 인주처럼 죽음의 위협에 직면한다.
2005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몽고반점>이 포함된 전작 《채식주의자》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바람이 분다,가라》는 낯설 것이다. 《채식주의자》에서 한씨는 폭력적이고 소통이 불가능한 세상을 등지고자 하는 인물을 그려내며 죽음 쪽으로 기울었다. 《바람이 분다,가라》는 정반대다. 연인과 친지의 죽음,결혼 실패 및 이빨을 하얗게 드러내는 세상의 악의에 여과없이 노출된 정희와 인주의 삶은 《채식주의자》에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한씨가 내리는 결론은 정반대다. "세상에 계속 찢겨져나가도 살 가치가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채식주의자》에서 삶의 끝,죽음까지 갔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삶으로 돌아온 거지요. 우리의 삶은 피비린내와 성스러움이 공존하고 있어요. 생은 여러 겹이잖아요. 소설에서 무한하고 신비한 우주 이야기를 반복하는 이유도 사실 세계가 전율할 만큼 아름답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어요. 이 소설이 '왜 살아야 하나'란 질문에 하나의 답이 되길 바랍니다. 또 《채식주의자》는 절제하면서 전개했지만 《바람이 분다,가라》는 격하게 싸우고 소리지르는 느낌으로 집필했습니다. "
소설의 막바지에 사고 직후 인주가 그랬듯 정희도 브레스 파이팅 상태에 들어선다. 인주는 숨을 거두었지만 정희는 친구의 몫까지 살아남으려는 듯 생에 매달린다. 허파를 찢을 듯 거칠게 숨쉬면서 삶의 문을 힘차게 두드린다. 이를 담아내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탁월하고 인상적이다. '누군가가 무릎이 짓이겨진 채 뜨거운 배로 바닥을 밀고 간다. '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