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현지시간) 제네바 모터쇼 전시장 내 도요타 부스.오후 5시께 도요타의 프레젠테이션 시간이 다가오자 전 세계 기자 1000여 명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혼잡을 빚었다. 도요타의 리콜 문제가 최대 관심사가 됐기 때문이다. 에티엔 플라스 도요타 유럽법인 홍보책임자는 "이 문제를 비켜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취재진의 반응이 과도한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한 사람은 도요타 유럽법인의 안드레아 포미카 부사장이었다. 디터 제체 다임러 회장 등 거물급 최고경영자(CEO)들이 직접 행사를 주관한 다른 회사와 대조를 보였다. 그의 첫 마디는 사과였다.

"도요다 기이치로 창업자가 월등한 품질을 가진 차를 만들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합심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고 소개한 뒤 "이 정신을 망각했다"고 참회했다.

행사장 옆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오카모토 가즈오 부회장도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우리는 고객들의 기대를 배신했다"며 "디자인과 제조,판매 등 모든 과정에 새로 눈을 뜨고 있다"고 머리를 숙였다.

도요타가 신제품을 자랑해야 할 시간에 사과문을 낭독한 데 대해 다른 업체 CEO들은 마냥 반갑게만 여기지 않는 눈치였다. 가장 큰 이유는 리콜 문제가 '남의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제체 회장은 "품질에 자신감을 갖고 있지만,리콜 위험이 제로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토로했다. 밥 루츠 GM 부회장은 "우리는 (도요타와 달리) 양적인 면에서 1등을 추구하지 않는다"며 가시 박힌 공격을 멈추지 않았지만,국내 업체의 한 CEO는 "도요타가 신뢰에 타격을 입었지만 이번에 조직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오히려 약이 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실제로 도요타는 '리콜 이후'를 대비하고 있다.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미국 청문회가 끝난 뒤 이번 모터쇼에 오는 대신 중국으로 날아갔다. 중국에선 7만5000여대밖에 리콜하지 않았지만,시장 잠재력이 유럽보다 크다는 실리적인 판단에서다. 도요타 주가는 지난달 미국 판매량 감소폭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작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날 도쿄 증시에서 3.2% 급등했다.

제네바(스위스)=조재길 산업부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