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은 글로벌 기업들의 '줄 세우기'에 일가견이 있습니다. 이 잡지가 매년 발표하는 '글로벌 500대 기업',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등의 순위지표는 그 타당성을 떠나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주목받는 기업평가입니다. 이는 글로벌 업계의 현황을 고스란히 반영한다는 평도 받고 있어, 기업들도 이 순위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우곤 합니다.

포천의 '가장 존경받는 기업'은 지난 1997년부터 발표되고 있습니다. 직전해 연말에 발표되는 '글로벌 500대 기업'을 30개 산업분야로 나눠 기업 임원진과 애널리스트 등 산업 전문가 1만명 이상의 설문조사를 통해 순위를 매깁니다.

평가기준은 단순히 '얼마나 돈을 잘 벌었냐'가 아닙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브랜드 신뢰도, 인재관리, 혁신성, 장기투자가치, 해외사업능력, 자산활용도, 재무건전성, 경영의 질 등 총 9가지 평가항목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주로 평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기업의 첫 번째 목적이 수익을 창출하는 것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만, '존경받는' 기업은 그보다 '조금은' 더 잘 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오는 22일자로 발간되는 포천 최신호에는 올해의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50' 순위가 실립니다. 포천은 4일(현지시간) 인터넷판으로 이 순위를 미리 공개했습니다. 역시 제 관심은 자동차 업계로 쏠릴 수밖에 없었는데요. 나름 관심을 가질 만한 변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발표에서 가장 주목받은 변화 중 하나는 지난해 이 순위에서 3위를 차지했던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입지 변동입니다. 도요타는 지난 수 년 동안 이 순위에서 10위권에 안착하며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일류 기업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미국을 제외한 나라의 기업들 중에서는 단연 1위였고요.

올해 도요타는 이 순위에서 7위에 랭크됐습니다. 지난해보다 4계단 하락했지만 여전히 10위권을 유지했습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대규모 리콜(결함시정) 사태를 감안하면 다소 의아하다는 반응도 나올 법 합니다.

순위를 발표하는 포천 측도 결과를 두고 다소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걸까요. 포천은 도요타가 7위를 유지한 것에 대해 "이번 조사는 지난해 가을, 겨울 사이의 설문 응답을 집계한 것으로, 이 중 대부분은 지난해 10월 도요타 리콜사태가 알려지기 전 접수됐다"며 "내년 결과가 주목된다"고 굳이 부연했습니다. 도요타 리콜 사태는 지난해 10월 시작돼 해를 넘기며 점점 악화되고 있고요. 이번 순위 조사가 리콜 사태의 '직격탄'을 비껴 맞았다는 게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앞서 얘기했던 포천의 순위 선정 방식을 다시 살펴보면, 9가지 항목 중 '사회적 책임'과 '신뢰도'가 눈에 띕니다. 도요타의 이번 리콜 사태가 이토록 전세계 언론의 뭇매를 맞는 것은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평이 우세한 것으로 보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단 4계단만이 내려간 도요타의 이번 순위가 '선방'을 한 것으로 풀이될 수도 있지만, 보기에 따라 이 회사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기 시작한 '징조'로 읽힐 수도 있는 건 아닐까요. 도요타가 세계 1위 자동차업체로 올라선 2007년 이후 5위권 밖으로 밀려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포천이 '존경받는 기업의 이유'를 설명하면서 유독 도요타에 대해서만 '집계 기간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해명하는 까닭도 생각해 볼 문젭니다.

'포천 500대 기업'의 평균 수명은 생각보다 짧습니다. 수십만개도 넘는 전세계의 기업들 중 상위 500곳이라니 어디 하나 만만한 곳이 없지만, 그 위세가 얼마나 지속되느냐는 별개의 문젭니다. 이들 500대 기업의 평균 수명은 약 40년, 지난 1970~1980년대에는 포천 500대 기업 중 3분의 1이 채 15년을 못 버티고 사라졌다고 하네요.

포천은 이번 도요타의 순위를 '해명'하면서 하나의 예를 들었습니다. 지난 2004년 미국 제약회사 머크(Merck)의 관절염 치료제 바이옥스가 심장마비와 뇌졸중 위험을 키운다는 이유로 리콜을 실시한 후 이듬해 존경받는 기업 리스트에서 퇴출된 사례입니다. 그리고 머크는 다시는 이 순위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현지 언론에서는 머크가 당시 후유증 위험을 숨겼다는 내용의 추적보도를 내놓고 있습니다. 한 번 흔들린 신뢰는 이렇듯 다시 찾기 어려운겁니다.

도요타에게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이번 리콜 사태가 아직까지는 '진행 중'이라는 겁니다. 일각에서는 이를 계기로 도요타가 재도약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아직은 기회가 있다는 얘기인데요. 도요타의 지속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시험받고 있는 지금, 앞으로의 사태의 향방에 계속 관심을 거둘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한경닷컴 이진석 기자 ge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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