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실패'에 대한 논란은 크고 작은 경제위기 때마다 벌어진다. 변화의 양상이 예측 가능한 범위를 벗어났을 때,그로 인해 예기치 못한 위기에 처하게 되면 어김없이 회의론이 제기된다. 2008년 가을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류 경제학이 눈 앞에 보이는 수리와 계량화에만 매달려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는 큰 흐름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 세계 경제학자들의 뒤늦은 반성이었다.

지난 2일 신임 한국경제학회장으로 취임한 안국신 중앙대 부총장(63)은 이런 자성론의 한가운데 있는 인물이다. 그는 "경제학이란 학문은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주변 환경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 진단-전망-대안제시로 이어지는 '스펙트럼'을 가져야함에도 위기 이전 국면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2001년 한국계량경제학회장을 지내기도 했던 그는 경제학이 단순한 숫자놀음을 뛰어넘어 복잡한 시장의 현실과 인간의 심리에 눈길을 돌려야한다고 역설했다. "계량경제학의 위기를 돌파해 나갈 수 있는 대안 모색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현실경제와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는 '살아있는 경제학'을 구현해야 해요. "

한국경제학회장으로서의 포부와 경제학자로서의 경제관을 들어봤다.

▼정부는 금리인상 같은 출구전략이 '시기상조'라는 입장입니다.

"지금처럼 초저금리에서는 기준금리(연2%)를 0.25~0.5% 포인트 정도 올린다고 해도 통화정책은 여전히 확장기조 수준입니다. 조금 올리는 것은 별 문제가 없습니다. 굳이 미세 상향조정을 언급하는 이유는 시장에 미리 신호를 보내줘야하기 때문입니다. 비정상적으로 낮은 금리는 머지않아 정상화되어야 하고 통화정책은 경기변화에 선제적으로 운용돼야 소기의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정부는 특히 부동산 가격동향을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작년에 부동산 가격이 주요 선진국에서는 하락했지만 한국에서는 올랐습니다. 선진국보다 경기회복이 빠르고 부동산가격이 상방 신축적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

▼정부가 우려하는 것은 금리 자체가 아니라 이를 인상했을 때의 여파입니다. 특히 고용상황이 취약한데 정부의 고용정책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정부는 최근 공공부문에서 공공근로,자활,인턴 등과 같은 임시직,일용직,단순직 형태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청년실업자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이런 단기적인 일자리마저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에 따라 고육책으로 나서는 거죠.하지만 공공근로라도 부가가치가 낮은 단순작업형의 후진국형 공공근로가 아니라 부가가치가 높은 선진국형 공공근로로 격상시켜야 합니다. 예컨대 IT 인프라,친환경녹색 분야의 R&D 투자 등과 연계되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

▼고용문제의 해결책으로 서비스산업 선진화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료서비스 부문 등 일부 업종에서는 이해집단 간 마찰이 적지 않습니다.

"어떤 산업이든 필요한 규제와 불필요한 규제가 동시에 있습니다. 필요한 규제는 도입하고 불필요한 규제는 없애 나가는 것이 산업 발전을 위한 일이죠.의료서비스산업에서 필요한 규제는 의료면허갱신제도입니다. 의사들은 일정한 주기로 전문성을 강화하는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강제하는 규제는 꼭 필요함에도 한국에는 없습니다. 영리의료법인(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을 막는 규제는 대표적으로 불필요한 규제입니다. 의료 양극화와 의료비 상승을 낳고 수익성이 높은 고급 의료서비스에 의사와 병원이 몰려 건강보험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영리법인을 반대하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의료 해외쇼핑이 갈수록 크게 느는 현실에서 국내 의료양극화를 운운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입니다. 보편 의료서비스를 주축으로 건강보험체계를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영리법인을 조속히 허용해야 합니다. "

▼이명박 정부는 고용과 생산을 늘릴 수 있는 산업으로 저탄소 녹색성장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녹색성장이 신성장동력이고 우리 경제성장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문제는 MB정부가 4대강 살리기를 대표적인 프로젝트로 내세워 건설과 토목사업 비중을 너무 높였다는 점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녹색성장이라 할 수 있는 신재생 관련 R&D 예산은 50조원에 달하는 녹색뉴딜사업의 10%도 안되는 3조~4조원에 불과합니다. "

전세계가 확장적인 재정정책으로 재정건전성에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의 재정은 건전하다고 볼 수 있습니까.

"다들 현재의 재정수지보다 국가채무의 증가 속도를 염려하죠.정부는 관리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경제학자들이 걱정할 만한 이유는 분명 있습니다. 과거 참여정부는 2005년 봄에 중기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하면서 재정수지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마이너스1%와 플러스 1% 범위 내에서 탄력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히고,2009년에 국가채무를 GDP 대비 26% 수준으로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2009년 재정수지는 GDP의 마이너스 5%,국가채무는 35% 수준입니다. 근래에 유례없는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경제위기 때문이라지만 중기계획의 정상적인 변동폭을 너무 많이 벗어났습니다. 현 정부는 중기 재정운용계획에서 국가채무를 40%가 넘지 않게 관리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경기가 더블 딥(일시회복 후 다시 침체)에 빠지거나 본격적인 경기회복이 늦어지면 참여정부 때처럼 10% 포인트 가까이 훌쩍 뛰어 오를 수도 있습니다. 특히 국가채무의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 공기업 부채는 국회가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정부의 경각심을 일깨울 필요가 있습니다. "

▼재정건전성과 경기부양을 동시에 추구할 수는 없습니까.

"법인세와 같은 주요 세목의 세율을 낮춘다는 감세정책은 수정하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정부지출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공약사항이니까 감세는 감세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고 하면 중기계획이 신뢰성을 얻을 수 없습니다. 사실 감세의 경기부양효과는 별로 크지 않습니다. 반대로 증세의 경기위축효과도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닙니다. 하지만 더 걷은 세금으로 정부지출을 늘린다면 경기부양효과가 분명히 나타나겠죠.이런 재정정책 기조를 세워야 경기부양과 재정건전성을 같이 확보할 수 있습니다. "

▼지난달 27~28일 인천 송도에서 G20(주요 20개국)재무차관 · 중앙은행부총재 회의가 열렸습니다. 11월로 예정된 G20 정상회의를 성공시키기위해 의장국인 한국이 의제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까요.

"세가지가 필요합니다. 우선 기존 정상회의에서 제기되었던 각종 의제,예컨대 △글로벌 불균형 완화△국제금융기구 개혁△금융규제 및 금융감독 개혁△기후변화에 대응한 탄소배출권 협상 등의 구체적 실천방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기 이후에 지속 가능한 균형성장방안을 더욱 심도있게 논의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혁신에 기초한 장기적인 성장원동력을 발굴하고 녹색성장전략을 논의하는 것이 그 예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비(非) G20'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역할을 자임해야 합니다. 빈곤 축소와 개도국 지원 문제,대외충격에 취약한 개도국이 국제 간 자본이동의 폐해를 크게 받지 않도록 금융안전망을 확충하는 문제를 다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금융 안전망'에 대한 문제를 별도 세션으로 집어넣은 것은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

박신영 기자 nyusos@h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