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자동차 리콜 사태 등으로 잔뜩 위축된 일본 기업들이 슬슬 반격 채비에 나서고 있다. 히타치제작소 NEC 등 주요 기업들은 해외 경험이 많은 공격형 경영자들로 사장을 교체하기 시작했다. 적극적인 해외 시장 개척을 통해 위기의 탈출구를 마련하겠다는 전략이다. 여기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경제위기에 '선방'하고 있는 것은 세계 구석구석을 훑는 공격적 마케팅이 한몫 했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히타치는 미국 유럽 등 해외 주재 경험이 풍부한 나카니시 히로아키 사장(63)이 다음 달 1일자로 취임한다. 나카니시 신임 사장은 "지금 상황은 위기를 탈출하는 단계에서 개혁을 가속화하는 단계로 변했다"고 말했다. 2008년 7870억엔(약 10조2000억원)의 순손실을 낸 뒤 작년 봄 자회사 회장에서 본사 사장 겸 회장으로 취임한 가와무라 다카시(70)가 주도한 구조조정이 일단락됨에 따라 이제 본격적인 성장전략을 구사하겠다는 뜻이다. 가와무라 회장도 "앞으로 공격과 수비를 6 대 4 정도로 유지하고 싶다"고 밝혔다. 나카니시 사장은 "발전소와 철도 건설 등 해외 수주에 적극 나서 해외 매출 비중을 현재 40%에서 6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미쓰비시상사도 고바야시 겐 상무(61)를 사장으로 승진시키기로 결정했다. 오는 6월 사장으로 취임하는 고바야시 상무는 일본 종합상사에선 사장 후보의 필수 코스로 여겨지는 미국을 거치지 않았지만 아시아의 정보가 집중되는 싱가포르 지점장을 역임했다. 미쓰비시상사가 앞으로 중국 동남아시아 등 신흥국 시장을 중시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NEC는 회사 서열 15위의 엔도 노부히로 상무(56)를 전격적으로 사장으로 발탁했다. 엔도 상무는 휴대폰 기지국 등 통신장비 부문에서 인도 시장 등을 개척해 성과를 낸 것을 높이 평가받았다. NEC는 "해외 시장에서 싸우는 방법을 아는 경영자를 사장에 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간판 재계단체인 게이단렌 관계자는 "해외 시장에서 일본 기업들이 한국 기업 등에 뒤지지 않으려면 과감하고 결단력 있는 경영진이 필요하다"며 "최근 주요 기업의 사장 교체는 이런 필요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위기 진원지인 미국의 대기업들은 최고경영자(CEO) 보수를 대폭 삭감하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코카콜라의 무타르 켄트 CEO의 2009년 보수는 1480만달러로 전년(1960만달러)보다 25%가량 줄었다. 주식과 스톡옵션 등의 보상이 감소한 데 따른 것이다.

최근 미 증권관리위원회(SEC)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세계 최대 제약회사인 화이자의 제프리 킨들러 CEO는 작년 급여 총액이 1370만달러로 전년에 비해 7.6% 삭감됐다. 킨들러 CEO도 스톡옵션과 주식 보상 감소에 따라 전체 보상 규모가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미 최대 방산업체 록히드 마틴의 로버트 스티븐스 CEO의 경우 급여총액이 전년 대비 10% 감소했다. 미 최대 제조업체인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제프리 이멜트 CEO는 2008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보너스를 반납했다.

도쿄=차병석/뉴욕=이익원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