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아트'하면 고 백남준 선생(1932~2006년)을 떠올리지만 국내에 처음 비디오 아트를 선보인 인물은 따로 있다. 1977년 대구현대미술제에 비디오 아트 작품을 국내 처음 발표한 고 박현기 선생(1942~2000년 · 사진)이 그 주인공.

박 선생의 10주기를 맞아 그의 작품 세계를 돌아보는 대규모 전시가 9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대표 도형태)에서 열린다.

박 선생은 비디오 아트라는 말 자체가 생소하던 1970년대 초 이미 실험적인 작품을 잇달아 선보였다.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하던 백남준에게 영향을 받은 작가는 동양적인 정서를 표현하는데 비디오라는 매체를 활용했다. 테크놀로지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는 서양의 비디오 예술과 일정한 거리를 뒀다.

그는 상파울루(1979) 파리(1980) 등 세계적인 비엔날레에 참가한 것을 비롯해 미국,스위스,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초대전과 특별전을 여는 등 국제적으로도 높은 명성을 쌓아갔다. 이처럼 시대 흐름의 맨 앞줄에 서 있던 그는 국내 미술계에서 '영원한 아방가르드'로 불린다.

이번 회고전에는 제15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물 기울기' 퍼포먼스 영상을 비롯해 비디오 돌탑 '무제'시리즈,'TV 어항''TV 스톤''나무 손' 시리즈 등 1970년대부터 위암으로 타계한 2000년 1월까지 30여년에 걸친 그의 대표작 20여점이 망라돼 있다.

그는 디지털 스토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TV를 캔버스처럼 활용해 작품을 만들어 당시 화단에 큰 충격을 줬다.

1978년 대표작 비디오 돌탑 '무제'는 TV에 보이는 가상의 돌들이 진짜 탑의 일부가 되는 것으로 영상과 실재를 교묘하게 짜 맞춘 작품.디지털 기술과 아날로그의 신명이 만나는 마당인 셈이다. 마치 재즈에서 말하는 엇박자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는 "박현기는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테크놀로지를 서로 반영함으로써 '비디오로 그리는 동양화'를 완성한 작가"라고 말했다.

1981년 낙동강 물의 흐름을 촬영하거나 돌을 줍는 과정을 촬영한 비디오 영상 작업도 처음 공개된다. 낙동강에 실재하던 돌을 전시장으로 옮겨 오고,돌을 줍는 전체 과정을 촬영해 돌 위에 투사한 작품으로 디지털의 회화성을 보여준다.

"돌이란 태고의 시간과 공간을 포용하는 자연이다. 돌 작업은 동양적인 정서를 표현하는 동시에 서구 과학의 한계를 느낀 나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 (작가 노트)

TV와 나무,돌을 오브제로 다룬 '나무 손'(일명 무제) 시리즈 역시 기발한 상상력과 유머 코드가 담겨있다. 현대인의 물질적 욕망을 해학으로 풀었다고 볼 수 있다. 이밖에 미국 골동품 가게에서 구입한 원통형 붉은 제기에 부처 이미지와 포르노 동영상을 비춘 '만다라'(1997년), 스크린 보드위에 쏟아져 내리는 물의 이미지를 투사한 '폭포'(1997년)등도 눈길을 끈다 (02)2287-35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