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유서를 남겨놓고 아들이 자살했다. 아버지는 그 고통을 '옆구리에 까마득하게 높은,절벽 하나가 만들어졌다'고 표현했다. '생의 파도가 내 옆구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고 괴로워하던 아버지는 몽골 고비사막으로 떠난다. 고비에서 고비를 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막에서 아버지는 죽은 아들을 만나게 된다. 재회의 기쁨과 함께 삶의 의미도 깨닫는다.

소설가 정도상씨(50)의 장편소설 《낙타》(문학동네)는 아들을 앞세운 아버지의 애끓는 진혼곡이자 사자(死者)와 동행한 구도여행기다. 소설에는 정씨 본인의 아픈 체험이 반영되어 있다. 그 또한 소설 속 아버지처럼 2005년 몽골에 다녀온 후 아들을 잃었다. 정씨는 "일체의 시멘트벽과 장식이 없고,오로지 뼈로만 이루어진 집을 꿈꾸게 된 것은 아들을 잃고 난 이후였다"며 "아들의 죽음과 작은 깨달음을 맞바꾼 셈"이라고 말했다.

아들이 살아있을 때 아버지는 3000년 전 사막의 암각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미술공부를 하는 아들에게 '세월을 견뎌내는 그림'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생전에는 이룰 수 없는 약속이었지만 기적처럼 사막에서 죽은 아들과 재회한 아버지는 낙타를 타고,때로는 걸어서 같이 암각화를 보러 간다. 이 여로에서 부자는 유목민 등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흘러간 과거를 곱씹으며 깨달음을 얻는다.

'후회한들 낡은 계단으로 굴러떨어진 시간이 돌아오는 것도,치욕이 명예로 바뀌는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산다는 것은 치욕을 견디는 게 아니던가' 같은 문장에 반영됐다. 또 아버지는 아들과의 여행을 통해 앞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낙타를 타고 내 안의 사막을 건너기 위해 고비사막을 직진하기로 했다. 고비에서 나는 우회로를 알지 못했다. 어차피 고비에선 어디에도 길이 없었다. 모래에 낙타의 발자국을 찍으며 그저 가야만 했다. 운명이 어디로 흐를지 모르지만,지금보다 더 가혹해질 순 없었다. '

소설 마지막에서 아들은 "저 낙타를 타고… 춤추는 별로 갈 거야"라는 말로 영원한 작별을 고한다. 부모들은 먼저 보낸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는데,이 아버지는 아들을 하늘에 묻었다. '그러다 문득,하늘의 서쪽에서 깊은 어둠의 공간을 발견했다. 그곳이 어두운 숲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두운 숲을 한참 동안 응시하는데 불쑥 춤추는 별 하나가 나타났다. 규의 별이었다. '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