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자금이 예금으로만 몰리고 있다. 은행들은 이 돈을 대출하는 데 쓰지 않고 채권을 사들이는 데 열 올리고 있다. 기업들도 채권금리 하락기를 활용,회사채 발행을 늘리고 있다. 하지만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워낙 강하고 실물로 자금이 제대로 흘러들지 않아 실물경기의 빠른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안전자산 선호 다시 심화

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권의 저축성예금은 지난 1월 21조5000억원 늘어난 데 이어 지난달에 13조4000억원 증가했다. 올 들어 두 달간 저축성예금에 들어온 돈만 35조원에 이르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자산운용사의 주식형펀드 설정액은 126조2000억원에서 125조6000억원으로 6000억원 줄어들었다. 투자자들이 주식투자를 위해 맡겨놓은 고객예탁금도 올초 12조1000억원에서 지난 5일엔 11조7000억원으로 4000억원 감소했다. 은행 관계자들은 유럽발 금융불안 등으로 주식시장이 지지부진하자 주식에서 예금으로 자금이 옮겨오고 있으며,연초 상여금을 받은 직장인이나 지난해 결산을 마친 기업들이 목돈을 은행 예금에 맡기고 있다고 전했다.

은행들은 이렇게 들어온 돈을 대부분 채권에 운용하고 있다. 올 들어 두 달간 은행들이 직접 사들인 채권 규모만 12조원에 이른다. 또 지난달부터 자산운용사의 머니마켓펀드(MMF)나 채권형펀드에 돈을 넣어 간접적으로 채권을 매입하고 있다.

◆예대율 규제도 한몫

지난 1월 은행권의 대출 증가액은 4조2000억원에 불과했다. 지난달 대출 현황에 대한 집계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지만 설연휴에 따른 영업일수 단축으로 1월에 비해 크게 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은행들은 현재 대출수요가 부진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대기업은 막대한 이익을 바탕으로 대출을 쓸 이유가 없으며 중소기업은 위험부담이 있어 대출을 늘리기가 쉽지 않다. 주택담보대출은 총부채상환비율(DTI)과 담보인정비율(LTV) 규제 때문에 늘리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은행들은 여기에다 금융당국이 예대율 규제 시행을 준비 중이어서 대출 확대를 자제하고 있다. 예대율 규제란 쉽게 말해 예금으로 받은 돈 이상으로 대출해 주지 말라는 것이다. 은행들의 예대율은 2008년 말 120%에서 지난해 중반 114% 수준으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100%를 웃도는 상황이다. 한은 관계자는 "일부 시중은행은 예대율 100%를 올 상반기 중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잡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기업들 채권 발행 확대

은행들이 채권을 쓸어담자 채권금리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 지표물인 5년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초 연 4.98%에서 최근 연 4.56%까지 0.42%포인트 하락했다. 신용등급 AA-급 기업의 3년짜리 회사채 금리도 연초 연 5.56%에서 지난주 후반 연 5.22%까지 내려갔다.

이처럼 회사채 발행비용이 낮아지자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을 대폭 늘리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번 주 회사채(무보증) 발행규모는 1조8000억원으로 지난해 2월 넷째주(3조2800억원) 이후 1년 만에 최대로 파악됐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1월 하순 이후 중국의 긴축과 유럽 국가들의 재정리스크가 부각되면서 신용불안이 재개될 조짐을 보이자 일부 기업들은 특별한 자금 수요가 없어도 일단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해 은행에 자금을 쌓아두고 있다"고 전했다.

박준동/김동윤/유승호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