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경제위기 뒤에는 항상 정부 역할이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이번 금융위기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가 대폭 강화될 움직임이다. 그런데 그런 움직임이 과연 타당할까.

이제는 주지의 사실이 되었지만 금융위기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클린턴 행정부의 주택 소유 증진 정책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지역재투자법(Community Reinvestment Act)을 개정해 금융사로 하여금 주택담보대출을 늘리도록 했다.

둘째 주택담보대출은 원리금을 회수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므로 모기지 대출 금융사들은 이를 바탕으로 한 증권을 유동화해 자금 순환을 촉진했다. 월가는 이 과정에서 파생 금융상품을 등장시켰고,과도한 유통으로 거품 형성에 기여했다.

셋째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저금리 정책이다. 미 연준은 2001년 당시 5~6%를 유지하고 있던 연방기금 금리를 1%대로 끌어내린 후 2004년까지 유지했다. 금리 하락은 필히 통화량 공급 증가를 동반하는데,이렇게 증가한 유동성이 주택 거품을 크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2005년 이후 금리 인상과 함께 거품이 꺼지면서 금융위기가 촉발됐다. 그러므로 금융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연준의 '건전하지 못한(unsound)' 통화정책에 있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금융위기의 원인을 월가의 탐욕으로 규정하고 제도적 폐해를 막는다는 이름 아래 은행은 물론 비은행 대형금융사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다음의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한 진단이 채 이뤄지기도 전에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책임 전가일 뿐이다. 만일 주된 원인이 금융사에 대한 규제 실패에 있었다면 당시 경제 관련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던 벤 버냉키,팀 가이트너,로렌스 서머스 등이 모두 이에 관련된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이 그런 실패와 관련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대신 그 책임을 피규제자인 월가에 돌림으로써 책임을 모면하려 한다는 것이 시카고대학 로스쿨 교수 리처드 포스너의 지적이다. 그는 이를 '부정의 정치(politics of denial)'라고 칭하고 있다.

둘째 미국 금융역사는 정부 규제와 금융회사의 회피가 반복되는,즉 '규제→회피→재(再)규제→재회피→재재규제→재재회피…'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대결의 역사였다. 보스턴대 경제학자인 에드워드 케인 교수는 이를 규제의 변증법(regulatory dialectic)이라고 부르고 있다. 물론 회피는 금융혁신(financial innovation)을 통해 이뤄졌다.

금융위기 이후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미국 상하원 안(案)은 금융감독기구의 재정비를 통한 감독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한 이른바 '볼커 룰(Volcker rule)'은 고객에 대한 서비스와 관련이 없는 상업은행의 투자금융 행위를 금지하고 금융사의 크기를 제한하는 사항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규제 있는 곳에 이를 회피하는 풍선원리는 어김없이 적용되며,따라서 규제가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만일 성공한다면 금융산업은 심대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세계에서 금융산업을 가장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는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금융사들이 반복적으로 도산했다. 이는 곧 문제의 본질이 규제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뜻한다. 이제는 규제보다는 통화제도 자체를 신중하게 살펴봐야 한다. 즉 관리통화제도 아래에서 돈을 찍어 흥청망청 지내다가 위기를 초래한 세계 역사를 잘 들여다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김영용 <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