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야 할까. 여학생의 대학진학률(82.4%)이 남학생(81.6%)을 앞질렀다고 한다. 1986년 32.6%로 남학생보다 7.1% 낮았던 여학생 대학진학률이 계속 높아지다 지난해 역전됐다는 것이다. 뿐이랴.서울대와 연 · 고대의 여학생 비율은 40%가 넘는다. 외무고시의 경우 지난해엔 48.8%였지만 이전 몇 년 동안 여성합격자가 60%를 넘었다. 올해 임용된 법관의 69%,검사의 58%가 여성이다.

이러니 일부에선 '여풍이 너무 거세다'고도 한다. 그러나 알파걸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성평등지수'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에 앞서 여성부가 발표한 성평등지수는 2008년 현재 0.594. 2005년 0.584에서 2007년 0.594로 0.01 증가한 뒤 제자리다. 성평등지수는 가족 · 복지 · 보건 · 경제활동 · 의사결정 · 안전 등 8개 부문을 대표하는 21개 지표값에 가중치를 반영해 산출하는데 보건 · 문화정보 등은 좀 낫지만 의사결정 부문은 0.116으로 형편없고 복지 · 가족 · 안전 역시 엉망이다.

그도 그럴 게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과 성별 임금격차,비정규직 여성비율 모두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지고 있다. 지난해 여성 비경제활동인구는 1042만명으로 전년보다 28만6000명이나 증가,여성고용동향 통계가 작성된 62년 이후 가장 많은 수를 기록했다.

극소수 알파걸을 제외한 보통 여성들의 경우 학력은 높아지는데 마땅한 일자리는 없다는 얘기다. 많은 여성들이 대학만 나오면 사회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리라 여기지만 졸업 후 세상은 딴판이다. 철옹성 같은 취업벽에 스펙을 높이려 학원에 다니고 자격증도 따보지만 쉽지 않다.

결국 부모 등 주위의 눈치를 보다 못해 문턱이 낮은 서비스 직종에 취업하면 몸이 고달픈 것까진 참을 수 있는데 비전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괴롭다. 게다가 고객의 태도가 어떻든 무조건 친절해야 한다는 식의 방침 때문에 힘들어 하다 자괴감만 가득한 채 그만두는 일도 잦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유통업 여성 비정규직 차별 및 노동권 실태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74%가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답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실제 24시간 콜센터 보편화로 늘어난 텔레마케터의 경우 언어폭력과 성희롱을 당해도 전화를 먼저 끊을 수 없어 일부는 그만둔 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겪는다는 마당이다.

많게는 100만명 정도로까지 추정되는데도 불구,감정노동에 대한 기준은 물론 악성 고객에 대한 대응 매뉴얼이나 근절대책도 없다는 실정이다. 백화점 호텔 등 다른 서비스업 종사자도 마찬가지다. 자존심 때문에 어디다 하소연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다 육체적 건강은 물론 정신 건강까지 해친다는 것이다. 정규직이라 해도 법과 다른 현실로 인해 출산 후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어려워 사표를 쓴다.

여풍당당 운운하지만 현실 속 대부분의 보통여자들은 졸업 후 길을 잃고 헤맨다는 말이다. 정부는 여성 실직난 해소를 위해 상반기 중 국가고용전략회의를 통해 여성 일자리 창출과 여성실업자 직업훈련 강화 등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여성 일자리 문제는 이런 원칙론만으론 해결할 수 없다. 중요한 건 일자리의 숫자보다 질이다. 서비스직 외에 다른 직종을 늘리기 어렵다면 서비스직의 환경과 업무 지침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실시해야 한다. 돈은 적어도 최소한의 자존심과 인간적 대우가 보장돼야 자신과 세상에 대해 긍정적 사고를 할 수 있다.

'고등교육을 받은 만큼 제밥벌이는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하는 수 없이 일하거나 도저히 참기 힘들어 그마저 포기하는 여성이 늘어나는 사회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 여성이 행복한 도시나 나라를 만들자면 곳곳에 CCTV를 설치하는 것에 앞서 감정노동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위한 제도적 장치부터 마련해야 한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