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독일 서북부의 작은 도시 뮌스터.도심 한복판에 자리잡은 '래커(lacquer · 도료) 박물관'을 찾았다. 뜻밖에도 옻칠과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동양의 고가구와 소품들로 가득했다. "한국,중국,일본 등에서 건너온 10~19세기의 수작"이라는 큐레이터의 설명이 이어졌다.

래커 박물관을 운영하는 곳은 독일 화학회사 바스프(BASF).2000여점에 달하는 독특한 컬렉션을 수집한 배경은 코팅 산업이 동양의 래커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장식과 보호 기능을 동시에 갖춘 천연염료 방식의 래커문화는 16세기 무렵 별다른 도료 기술이 없던 유럽에 전해지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바스프 관계자는 "주민들에게 역사적인 흥미를 주면서 지역 산업의 주축인 바스프 코팅공장의 존립 근거를 이해시키는데도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폭스바겐이 볼프스부르크에 조성한 '아우토슈타트(Autostadt · 자동차도시)'의 자동차 박물관 '차이트하우스(Zeithaus)'도 인상적이었다. 1886년형 벤츠를 비롯해 비행기 조종석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100여년에 걸쳐 출시된 400여대의 차량들이 눈길을 끈다.

신차를 보관하는 '글라스 타워' 등으로도 유명한 아우토슈타트는 2000년 건립 이후 450만여명이 다녀간 지역의 명소다. 자동차 판매에 앞서 기업 이미지를 파는 폭스바겐이 얻는 홍보효과는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 기업박물관은 제품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전달하면서 소비자들에게 브랜드 가치와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헤리티지(heritage · 유산) 마케팅'의 일환이다. 타이어를 특화시킨 프랑스 미쉐린 박물관,화투에서 출발한 닌텐도가 운영하는 게임 테마관 '시구레덴' 등도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기업박물관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일부 기업 오너의 소장품을 전시하는 미술관 정도가 있을 뿐,내세울 만한 기업박물관이 드물다. 개방을 꺼리거나 엉뚱하게도 일반인들이 찾기 어려운 기업 연수원 안에 세워진 곳도 적지 않다. 도시의 품격을 높이고 지역사회와 소통하면서 브랜드 가치를 올리고 있는 외국의 기업박물관이 부러웠던 이유다.

이정선 뮌스터·볼프스부르크(독일)/산업부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