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중심 상업지역이 몰려있는 강남은 수많은 가게와 점포들을 거느리고 있다. 대개 목이 좋은 가게는 손님이 많고 장사도 잘되는 편이다.

하지만 저절로 장사가 잘되는 집은 없다. 뭔가 특성이 있거나 손님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강남은 재능있는 창업자들의 아이디어 전쟁터로 변하기 일쑤다.

서울 도곡동의 '스타쉐프'는 파스타 탕수육 갈비샐러드 라면 등을 함께 파는 퓨전레스토랑이다. 이 식당의 메뉴인 '백만원 삼겹살찜'은 어느날 손님이 100만원을 쥐어주며 요리 비법을 알려달라고 한 데서 유래됐다. '놀라운 숭어요리'라는 메뉴 역시 단골손님이 직접 이름 지어준 것이다.

신라호텔 셰프로 15년간 일하다가 2006년 3월 독립한 김후남 사장(47)은 강남 손님들이 까다롭지 않으냐는 질문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손님이 음식의 가치를 꼼꼼히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해서다. 물론 초기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입소문이 나지 않은 데다 한꺼번에 양식 · 중식 · 한식을 제공하는 식당 음식은 맛이 없다는 일반의 선입견이 강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하루에 4시간만 자면서 새롭고도 품격있는 맛을 개발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요즘 이 식당은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이용할 수가 없다. 취재 도중에도 예약전화가 쉴 새 없이 걸려왔다.



고객의 마음을 얻어라

김 사장은 자신의 성공비결을 '망각'에서 찾았다. 스타쉐프의 메뉴 중 신라호텔에서 갖고 온 것은 하나도 없다. 일부러 그랬다고 한다. 고객층이 달라진 환경에서 예전의 레시피를 고집하다간 '백전백패'라는 판단에서였다. 김 사장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손님이 음식을 처음 입에 넣는 순간"이다. 고객들과의 기본적인 소통 과정이라는 것.고개를 끄덕이거나 미묘하게 변하는 표정을 보며 손님들과 유대감을 갖는 포인트를 잡아낸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영업철학은 "고객들의 감성을 산다"는 것이다.

강남에서 가게를 하는 소(小)사장들의 성공비결은 제각각이다. 하지만 변함없는 한 가지 철칙은 있다. 바로 손님의 마음을 사야 한다는 것이다.

청담동의 대표적 고깃집인 '박대감네'의 나영노 대표(46)는 휴대폰에 4000여명에 이르는 단골손님들의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있다. 명함을 받는 즉시 얼굴과 이름을 외우기 시작한다고 한다. "손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가게는 많은 단골을 확보하지 못해요. 새벽 4시에도 전화가 오면 직접 손님을 맞습니다. " 이 식당에는 배용준 권상우 등의 연예인들도 자주 찾는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아이리스'의 종영 파티도 이곳에서 열렸다고 한다.

비빔밥도 차별화하라

강남에서 성공하기 위한 또 다른 요소로는 제대로 된 상품과 차별화된 전략을 들 수 있다. 트렌드(유행)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도 필수다. 실제 강남 지역을 찾는 고객들의 특징 중 하나는 비싼 값을 지불하더라도 제대로 된 상품을 찾는다는 것.

프랜차이즈 음식점인 '완산골명가' 역삼점의 정원화 대표(50).그는 3년 전 창업의 꿈을 안고 첫 직장인 동부그룹에 사표를 냈다고 한다. 대기업을 그만둘 때 많은 이들이 만류했지만 지금은 과거 직장 연봉의 3~4배를 벌고 있다.

그는 "식당을 개업하면서 가장 많이 한 고민은 '그 나물에 그 밥'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의 문제"였다고 말했다. 매일 점심 메뉴를 고르지 못해 고민하는 인근 직장인들을 잡기 위해 차별화가 절실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본사에서 메뉴와 소스,육수까지 제공하는 프랜차이즈점이라고 해도 점주의 노력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본점에서 제공하는 야채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가락시장에 가서 신선한 야채를 골랐다. 손님이 좋아하는 겉절이,무말랭이 같은 밑반찬을 따로 체크해 두고 같은 반찬이 겹쳐서 나가지 않도록 조정했다. 정 사장은 "덕분에 인근 직장인들에게 '그 나물에 그 밥'을 파는 곳이 아니라는 점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트렌드 세터를 잡아라

유행을 주도하는 트렌드 세터들도 잡아야 한다. 트렌드 세터의 대표격인 연예인들을 잡기 위한 노력도 치열하다. 한채영 강성연 등 연예인들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는 'S휴 뷰티숍'의 선덕 원장은 연예인 고객이 드라마를 시작하면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함께 대본을 읽으며 어떤 스타일이 연예인과 드라마 캐릭터에 가장 잘 어울릴지를 연구한다고 한다. 선 원장은 "한채영씨가 드라마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에 출연하게 되면서 나 역시 고민이 많아졌다"며 "하지만 스타의 메이크업(화장)이 성공적일 경우 엄청난 효과가 있기 때문에 열심히 준비한다"고 강조했다.

처음부터 '뷰티 메이크업'을 했던 것은 아니다. 19세 때부터 메이크업을 시작해 올해로 20년째를 맞이한 그는 원래 무대 메이크업 전문가였다. '명성황후''오페라의 유령' 등 대규모 공연의 메이크업이 그의 작품이었다.

2006년 9월 미용실을 열어 1년에도 수십개의 뷰티숍이 문을 닫는 청담동에서 4년째 탄탄한 자리를 잡고 있다. 물론 순탄하지는 않았다. 무대 쪽에서 나름대로 닦아 둔 자신감은 금세 사라졌다. "무대 메이크업이 워낙 배가 고픈 직업이라 바꿨는데 청담동은 정말 힘들더군요. 이곳 고객들은 화장이 맘에 들지않으면 말을 하지 않아요. 그리고 다시는 안 오지요. 보통 지독하지 않으면 이 숨막히는 청담동 분위기를 견딜 수가 없어요. "지난 4일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선 원장의 얼굴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