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주행 중 영상을 기록하는 '차량용 블랙박스' 시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들이 영업용 차량 등에 블랙박스 설치 계획을 밝히고 있고,자동차 보험업체들도 블랙박스를 장착한 차량에 보험료를 약 3% 할인해주는 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어 일반 소비자들의 관심도 늘고 있다.

시장에서는 올해가 국내 차량용 블랙박스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는 해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차량용 블랙박스가 교통사고,각종 범죄 등의 증거로 인정받는 사례도 늘고 있다"며 "포화 상태인 내비게이션 시장을 벗어나 차량용 블랙박스 개발을 서두르는 업체들도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블랙박스로 교통사고 원인 규명

차량용 블랙박스는 주로 택시 트럭 등 영업용 차량 등에 장착돼 왔다. 하지만 최근엔 일반 자가용으로 수요가 확대되는 추세다.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블랙박스가 '제3의 목격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급발진 사고 등 원인 규명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블랙박스에 기록된 영상은 유리한 자료로 쓰일 수 있다. 주차 중 차량에 손상을 입거나 물건을 도난당할 때 범인을 찾기 위한 용도로 블랙박스를 장착하는 운전자도 늘고 있다.

차량용 블랙박스는 영상 기록을 위한 카메라,음성 녹음을 위한 마이크,정보 저장을 위한 메모리카드 등으로 구성돼 있다. 기능은 제품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10만원대 제품의 경우 기본적으로 전방 카메라와 저장장치만을 갖추고 있다. 30만~40만원대 고급 제품은 실내외 촬영 기능이 있으며 별도 배터리로 주차 중에 주변 상황도 녹화할 수 있다. 야간 녹화 및 고해상도 녹화 기능까지 갖춘 제품은 좀 더 비싸다.

블랙박스를 장착한 차량 소유자는 보험료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삼성화재 현대하이카다이렉트 에르고다음다이렉트 더케이손해보험 등은 블랙박스 장착 차량에 3%의 보험료 할인 혜택을 주고 있다.

◆어떤 제품들 나와 있나

국내 차량용 블랙박스 시장은 2007년 유비원 켄택코리아 등 중소업체들이 제품을 출시하며 형성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관련 업체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제품을 내놓은 업체만 80여곳에 이른다.

자동차용 전자기기 전문업체인 에이치엠에스(HMS)는 차량용 블랙박스 '로드메모리' 제품군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이 회사가 최근 출시한 로드메모리 HDR-1000은 차량 운행 중에 충격이 발생할 경우 별도로 조작하지 않아도 바로 영상을 기록,저장한다.

운행 중 전방의 화면을 계속 촬영하다 충격 전후 20초간의 영상을 메모리에 자동으로 저장하는 방식이다. USB 단자로 케이블 등을 연결해 차 안에서 바로 내비게이션이나 노트북 등을 통해 사고 상황을 신속하게 확인할 수도 있다.

GPS(위성 위치확인 시스템)가 내장돼 있고,음성 녹음 기능도 담겨 있어 사고 당시의 정보를 상세히 확인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별도의 조작 버튼 없이 제품을 앞면 유리 위에 장착하면 곧바로 사용이 가능하다. 가격은 21만5000원이다.

아이트로닉스가 내놓은 'ITB-70'은 카메라가 180도 회전해 앞면뿐 아니라 필요에 따라 차량 내부까지 녹화가 가능하다. 상시 녹화 기능을 기본으로 갖추고 있으며 오래된 영상은 자동으로 삭제된다. 유비테크놀로지는 'IBX1000'라는 제품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이 제품은 130만 화소 이미지 센서를 내장하고 있으며 주차 중에도 녹화할 수 있다. 현대모비스도 지난해 말 차량용 블랙박스 'HDR-1300'을 개발,판매하고 있다. 사고 전후 30초간 촬영 내용이 자동 저장되는 게 특징이다.

팅크웨어 파인디지털 등 내비게이션 업체들도 차량용 블랙박스 시장에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팅크웨어는 상반기 안에 블랙박스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블랙박스는 기술 장벽이 높지 않아 전국 유통망 및 서비스센터를 갖추고 있는 팅크웨어의 시장 확대가 빠른 속도로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품 살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아직 국내에서는 차량용 블랙박스의 정의가 모호한 상황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현재 판매 중인 저가형 블랙박스는 주로 영상만을 기록하고 저장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표준원의 국가 규격에 따르면 차량용 블랙박스는 자동차 사고 발생시 영상 기록,주행 거리,속도,방향,브레이크 작동,안전띠 착용 유무 등 관련 데이터를 저장해야 한다.

현재 보험사 가운데 국가 규격에 맞는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곳은 에르고다음다이렉트가 유일하며 다른 보험사들의 경우 블랙박스의 성능을 정확히 규정하지 않고 있어 사고 발생시 분쟁 소지도 있다. 보험사의 차량용 블랙박스 설치에 따른 혜택 등을 확인할 때 관련 규정을 명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블랙박스로 알고 제품을 구매했지만 할인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차량용 블랙박스 시장에 수많은 업체들이 몰리고 있지만 자체 기술력을 확보한 업체는 20개 정도이고 대부분 외주 생산을 맡긴다"며 "이 때문에 애프터서비스를 못 받는 사례도 있다"고 지적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