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업 임직원이 업무와 관련해 투기 기회를 얻어 실제 투자했다면 손해를 봤더라도 배임수재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는 8일 건설업자에게 수십억원을 대출해 주고 사업지 인근 땅을 사들인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수재)로 기소된 모 금융기관 전 지점장 최모씨와 모 은행 전 지점장 김모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부동산 개발 사업과 관련,정보를 미리 취득하고 투자할 기회를 잡은 것만으로도 금융기업 직원을 공무원에 버금가게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재판부는 "금융기업 임직원이 부정한 이익을 얻은 경우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직무와 관련됐다고 봐야 한다"며 "토지 매입 경위나 당시 땅값 상승 가능성을 볼 때 피고인들이 투기를 했다고 본 원심 판단은 옳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적법한 과정을 거쳐 신용보증 심사를 했고 회사에 아무런 손해도 끼치지 않았으며 땅값이 떨어져 이익을 취한 적이 없다"는 피고의 주장에 대해 "투기 후 이득을 보지 못했더라도 투기 기회를 얻은 것만으로도 죄가 성립하는 데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설명했다.

처벌 규정에 정의된 이익은 유무형의 예상 이익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재판부는 "특경가법의 입법 취지는 금융 업무가 국가정책과 국민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금융기업 직원에게 일반공무원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청렴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와 김씨는 2007~2008년 충남 보령 신흑동에서 펜션단지 사업을 추진하던 박모씨 등 2명에게 36억원을 대출해주고 단지 인근 땅 660㎡씩을 3.3㎡당 20만원에 사들였다.

당초 박씨 등 2명은 사들인 땅을 40만~50만원에 팔기로 했으나 최씨 등에게는 반 값에 판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성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