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으로 투병 중인 법정 스님(78)은 평소 "산중 오두막 생활에서 가장 행복한 때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책을 읽을 때,즉 독서삼매에 빠졌을 때"라고 말해 왔다. 출가를 결심한 뒤 단박에 삭발하고 입은 승복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지만 유일한 '소유물'이었던 책만큼은 끊기 힘든 인연이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그는 애서가였다.

그런 법정 스님이 평소 법회 등에서 언급한 책 중 50권을 골라 소개한 《내가 사랑한 책들》(문학의숲)이 출간됐다. 법정 스님이 평소 법회나 기고문에서 언급한 책 가운데 300권을 고르고 2년여에 걸쳐 스님과 대화하며 이 중 50권을 추려냈다는 게 출판사 측의 설명.추천된 책의 주요 내용과 법정 스님이 인용하거나 언급한 내용 등을 소개하고 있다.

평소 "좋은 책은 세월이 결정한다. 베스트셀러에 속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던 법정 스님은 병중에도 원고를 꼼꼼히 읽고 문장을 바로 잡아주었다고 한다.

50권 중에는 종교책,명상서적,동서고금의 문학작품,환경 책,인권 관련서 등 다양한 장르와 주제의 책이 포함돼 있다. 법정 스님이 경전이나 그 주석서 못지않게 자주 봤다는 《어린왕자》 《꽃씨와 태양》 같은 동화부터 소유에 대한 개념을 배웠다는 《톨스토이 민화집》,읽은 뒤 직접 현장을 찾았던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와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창간호부터 줄곧 구독해 온 《녹색평론》,인도 철학의 꽃이라 불리는 《바가바드기타》까지 일독을 권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제러미 리프킨의 《음식의 종말》 등도 추천목록에 올랐다. 국내서로는 윤구병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김태정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꽃 백가지》,허균의 《숨어사는 즐거움》 등 고금의 명저를 망라했다.

한편 최근 수년간 몇 차례 수술과 치료를 받은 법정 스님은 지난 겨울 제주도에서 요양해 왔으나 병세가 악화돼 현재 삼성서울병원에 입원 중이며 병세가 위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